‘웰다잉 가이드라인’ 펴낸 한국죽음학회장 최준식 교수… 멋진 인생의 완성 ‘좋은 죽음’을 말하다
입력 2010-11-11 19:20
“노환이나 질환으로 임종에 임박한 사람이 병상에 있다고 칩시다. 제 아무리 멋진 인생을 산 사람이라도 대개 약에 취해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고 연명하다 세상을 뜨곤 합니다. 그는 과연 좋은 죽음을 맞은 걸까요?”
11일 서울 대현동 이화여대 교정에서 만난 최준식(54·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사진) 한국죽음학회장은 우리 사회의 죽음 문화가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평소 죽음을 외면하다보니 임종을 맞는 순간까지 우왕좌왕하거나 생명 연장에만 매달린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사고사가 아닌 경우 대개 한국인이 죽기 몇 달 전에 쓰는 의료비는 평생 쓰는 의료비의 40%를 차지한다고 한다”며 “죽음에 대비했다면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고 좀더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사망자는 24만6942명이다. 가족을 4명으로 치면 100만명 정도가 배우자나 부모, 혹은 자녀의 죽음을 경험한 셈인데 여전히 우리 사회는 죽음에 대해 언급하는 걸 꺼린다고 최 회장은 말했다. 게다가 사람이 죽으면 마을 구성원이 함께 슬퍼해주던 전통마저 사라져 현대인들은 별다른 대책 없이 죽음을 맞는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죽음을 경시하는 문화가 우리 의료 시스템에 만연해 있다고 비판했다.
“대부분의 한국 의사들은 환자를 망가진 기계로 생각합니다. 고치는 데만 치중하고 완전히 망가진 환자는 잊어버리는 습관이 있죠. 말기암 환자에게 몇 마디로 병을 알리거나, 20∼30분 더 살게 하려고 심폐소생술을 벌이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선 안 됩니다.”
2005년 학회를 설립한 최 회장은 그동안의 연구를 정리해 ‘한국인의 웰다잉 가이드라인’(대화문화아카데미)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책은 일반인에게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 등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의료진이 말기 질환을 어떻게 환자에게 알려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라인도 제시했다.
최 회장은 “죽음을 무섭고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삶을 완성하는 마지막 성장의 기회로 바라봐야 한다”며 “무작정 삶을 연장하려 하기보다 어떻게 해야 존엄하게 죽음을 맞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제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 생각을 전환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한국죽음학회는 책 출간에 맞춰 12일 오후 4시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가이드라인 공표식과 유언장 서명식을 개최한다.
글·사진=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