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추가협상 결렬] 쇠고기까지 양보하라고?… ‘정치적 부담’에 대화 스톱

입력 2010-11-11 21:23


한·미 정상이 11일 정상회담 이전까지 결론을 내겠다고 공언했던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합의가 실패로 돌아간 데는 ‘정치적 부담’이 가장 크게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협정문을 결국 손댈 수밖에 없게 돼 “재협상은 없다”는 약속을 지키기 어렵게 된 데다 “얻은 것 없이 잃기만 했다”는 정치권 등의 반발도 의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관측이다. 여기에다 막판에 미국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들고 나온 점도 정권 핵심부에서 협상 결렬을 선언하게 한 요인으로 보인다.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이해영 교수는 “자동차도 양보했는데 쇠고기까지 줄 경우에 정치적으로 타격이 있었을 것”이라며 “정부로서는 여론을 수렴하기엔 시간이 부족하고 마구잡이로 밀어버리면 후폭풍이 거셀 것이기 때문에 후속 협의를 갖자고 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미 FTA 실무협의가 결렬됐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이미 협상은 끝났다”고 말했다. 쟁점 현안에서 타협점 도출에 실패한 게 아니라 정치적 요인 때문에 타결을 잠시 미룬 것으로 봐야 한다는 의미다. 한 통상 전문가는 “자동차 안전 및 환경기준 등은 수용해도 큰 타격이 없다”며 “하지만 야당을 비롯한 정치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마지막에 더 얻으려고 꺼내놓은 미국 측의 쇠고기 개방을 이유로 일단 결렬을 선언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5월 실무협의를 진행키로 하면서 줄곧 “협정문의 점 하나도 고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협정문 수정이 아닌 ‘양해각서’나 ‘장관고시’ 정도로 협의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이런 탓에 미국 측의 불만 해소를 위해 협의를 하면서도 어떠한 요구안도 만들지 않았다. 주고받는다는 식의 협의가 되면 재협상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미국이 협상 보따리를 풀자 자동차 교역 부문과 관련된 요구안으로 인해 협정문의 부속서나 서한 등의 추가가 필요했다. 한국의 자동차 연비 및 온실가스 배출규정 적용 예외기준을 당초 판매대수 1000대 미만에서 1만대 미만으로 완화해 달라는 것과 안전기준 관련 자기인증 허용범위도 현재 연간 판매 6500대 미만에서 1만대로 확대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들 요구는 우리 정부가 수용키로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마지노선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 단계부터였다.

미국은 한국산 픽업트럭에 대한 관세 철폐 기한을 연장해 달라는 요구와 한·유럽연합(EU) FTA처럼 관세환급률의 상한선(5%)을 정하자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한국은 협정문 본문을 고치는 일은 없다며 계속해서 ‘절대 불가’ 등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미국이 막판 협상테이블에 한국 국민에게 가장 민감한 쇠고기 전면 개방과 검역 완화 등을 담은 요구안을 올려놓는 초강수를 둔 것으로 보인다.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최원묵 교수는 “우리 측이 협정문은 절대 고칠 수 없다고 입장을 고수하니 미국은 여러 개 보따리를 꺼내놓게 된 것”이라며 “애초 아무런 원칙 없이 선 협상테이블 자체가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김아진 강준구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