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정의 사진] 사진, 찍지 않고 찧기
입력 2010-11-11 17:50
모든 것은 사라진 후에야 비로소 소중해진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기어이 사라지게 하고야 만다. 마치 후회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처럼. 몇몇 현명한 사람만이 이 역설을 거슬러 사라질 대상과 자신의 운명을 함께 바꿀 수 있을 뿐이다. 전북 진안군에 있는 계남정미소의 주인장 김지연씨처럼.
그녀는 평범한 주부로 지내다 50대에 처음으로 사진기를 들었다. 중년의 취미생활이겠거니 여기던 남편의 기대처럼 적당히 찍고 즐겼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된 영문인지 시작부터 평범치 않았다. 처음에는 사라져가는 정미소의 겉모습을 찍을 요량이었다. 어렸을 적 할머니를 따라 드나들던 정미소는 풍요의 상징이자 신이 나는 사랑방이었다. 기계에서는 냄새만 맡아도 배가 부른 하얀 쌀이 마법처럼 쏟아져 나왔고, 그 사이 사람들은 지난 장날 이야기며 아무개가 장가간 소식 등을 주고받았다. 그 유년의 외출이 김씨에게는 평생 동안 따듯한 기억으로 따라다녔다. 그래서 정미소 촬영은 근대화의 사라져가는 추억을 기록하는 것 이상의 각별함이 있었다.
마주하다 보면 통한다고 1999년부터 무려 500곳이 넘는 정미소를 찾아다니다 보니 과거의 화려함을 뒤로한 채 쓸쓸히 버려진 그 건물들이 안쓰러웠다. 정미소만의 독특한 건축미도 한없이 소중했다. 어느새 사진으로서만이 아니라 실체로서의 정미소를 지켜야겠다는 책임감까지 생겨났다. 공동체박물관이라는 수식이 붙은 계남정미소는 이 우여곡절의 결과물이다.
서른 해 가까이 운영해 오던 옛 임자에게서 사들였을 당시 계남정미소는 이미 1년 넘게 가동을 멈춘 상태였다. 섬진강가의 물레방앗간을 밀어내고 1970년대 초에 들어선 뒤 그야말로 마을 사랑방 노릇을 하던 곳이었다. 겉모습이며 내부까지를 고스란히 살린 채 티 안 나게 수리를 하려니 힘이 더 많이 들었다. 타지 아줌마의 헛일에 마을 주민들은 근심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그 과정을 거쳐 마침내 2006년 첫 전시가 열렸다. 제목은 ‘계남마을 사람들’. 집집마다 앨범에서 꺼내온 사진들이 벽에 걸리자 마을 사람들은 생애 처음으로 전시의 주인공이 되었다. 전라북도 근대 학교 100년의 역사가, 잃어버린 장날의 풍경이, 시골 학교 아이들이 손수 찍은 사진들이 계남정미소에서 다시 부활했다.
5년 세월이면 충분히 자리를 잡았을 법도 한데, 계남정미소의 살림 형편은 별로 나아질 기미가 없다. 여기저기 찾는 사람이 늘면서 제법 유명세를 타지만 수입 모델이 없기 때문이다. 남루한 공간에 낡은 사진이나 걸어두는 곳이라 생각해서인지 지자체의 지원도 신통치가 않다. 공동체를 문화적으로 복원하고 소통을 낳는 일. 어느 날 도정기가 멈추듯 계남정미소가 사진으로 찧어내고 있는 그 소중한 일들이 멈춰버릴까 두렵다.
송수정<포토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