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추가협상 결렬] 협정문 서명후 추가협상 ‘나쁜 선례’
입력 2010-11-11 18:28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협상은 밀실협상이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처음부터 한·미 정상회담 일정에 맞춘다는 데드라인(마감시간)을 정해 밀어붙인 협상이었다.
또 협정문 서명 이후에 추가협상을 허용하는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 비준 절차를 밟고 있는 한·유럽연합(EU) FTA나 앞으로 있을 다른 FTA 협상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미국에 끌려다닌 추가협상=이번 협상은 지난 5월 양국 정상이 실무협의에 합의하면서 시작됐다.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 민주당이 자동차, 쇠고기 분야 ‘불균형’ 해소를 강력하게 요구하면서 출발한 것이다. 우리는 2007년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끌려다녔다.
2007년 4월 서울에서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된 뒤 미국은 협정문 서명을 무기로 추가협상을 요구했다. 같은 해 6월 서울과 워싱턴에서 두 차례 열린 추가협상에서 미국은 환경·노동·의약품 등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관철했다.
또 양국 정상은 ‘서울 G20 정상회의 이전’이라는 시간표까지 만들었다. 우리 협상단 입장에서는 시간, 의제 등에서 협상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없었다.
여기에다 이번 협상은 절차의 문제점을 노출했다. 지난 9월 일본 센다이에서 시작한 비공식 실무협의부터 지난 4∼7일 실무급 협의, 8∼11일 통상장관회의까지 진행되는 동안 우리 협상단은 국회에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국회가 무력화된 것이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가 한 일이 하나도 없다. 반면 미국 협상단은 오기 전에 의회하고 긴밀하게 협의를 했다. 이런 절차상의 여러 가지 흠집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나쁜 선례’ 부작용 우려=협정문에 서명을 한 뒤에도 상대국의 추가협상 요구를 받아들였다는 점은 앞으로 ‘부메랑’으로 돌아올 전망이다. 벌써 EU가 심상찮다. 유럽의회 의원들은 지난 9월 우리 환경부가 입법예고한 자동차 연비 및 온실가스 배출허용 기준 강화안을 지목하고 있다. 유럽 자동차 회사가 한국 시장에 진출할 때 비관세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다. 미국이 이번 협상에서 요구한 것과 판박이다.
우리가 미국 요구를 상당부분 수용했기 때문에 EU도 이 부분에서 추가협상 등을 제안할 가능성을 배제키 어렵다. 한·EU FTA는 지난 10월 서명을 마치고 비준을 기다리고 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송기호 변호사는 “FTA가 세계무역기구(WTO)의 다자간 무역협상보다 더 이익을 얻기 위해 체결하는 것인데 이처럼 한 나라에 양보해준 것을 다른 나라에도 양보해주는 방식이면 FTA를 체결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