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정윤희] 허수아비춤
입력 2010-11-11 17:37
요즘 뉴스의 핫이슈는 ‘G20’인 것 같다. 20개 나라 정상들이 모이고 세계의 기업인들이 참석하는 G20은 우리나라가 의장국 역할을 함으로써 한국이 변방에서 중심 국가로 떠오르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자못 들뜬 분위기다. 서울 G20 비즈니스 서밋 개막 총회에서 지속 가능한 균형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내용을 담은 이명박 대통령의 개회사를 들으면서 최근 조정래 선생이 펴낸 ‘허수아비춤’이라는 장편소설이 생각났다. ‘허수아비춤’은 3대 대하소설 ‘한강’ ‘태백산맥’ ‘아리랑’의 연장선이자 압축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스카우트, 스톡옵션, 편법·불법 상속, 차명계좌, 비자금, 상납 같은 상류사회의 돈놀이가 펼쳐지고, 세태와 풍속에 대한 풍부한 재현들로 산업사회의 성장의 빛과 그늘, 자본과 분배의 문제를 날카롭게 그려냈다.
올해 등단한 지 40주년을 맞은 조정래 소설가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써온 작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작품에 깃든 혼은 아마도 영원하리라 본다. 책의 수명이 3개월에서 6개월임을 감안한다면 ‘태백산맥’은 세상에 나온 지 23년째인데 아직도 독자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지 않은가. 100년이 지나도 읽히는 문학 작품은 또 다른 역사의 유산이라 생각된다.
소설이 출간된 후 시월의 어느 날 예술의전당 앞 카페에서 조정래 선생을 만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그는 ‘경제민주화’라는 낯선 단어를 얘기했다. 선생의 말을 요약하면, 기업인들은 양심적으로 투명하게 경영하고, 세금을 정직하게 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국가는 기업이 세금을 제대로 냈는지 감시해서 궁극적으로는 국민을 위해 복지사회를 만드는 것,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경제민주화라는 의미다.
소설가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풍요롭고 인간답게 살기를 원한다. 경제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기업인들이 투명하게 경영하고 세금을 정직하게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그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국민 스스로가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민주주의는 산에 있는 나무가 아니라 화초와 같다. 산에 있는 나무들은 우리가 돌보지 않아도 자연의 힘에 의해 제대로 큰다. 그러나 화초는 1주일만 물을 주지 않으면 말라 죽는다. 세심하게 사랑으로 매일 돌봐야 되는 것이 화초이듯 민주주의도 화초와 같다. 서로서로 가꿔주고 사랑을 베풂으로써 사람다운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리라. 경제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적 병균인 파렴치한 개인 이기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했는데, 파렴치한 개인 이기주의는 비단 기업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작가가 “이런 소설을 쓸 필요가 없는 세상을 소망하면서 이번 소설을 썼다. 그러나 이런 소설이 완전히 필요 없게 될 세상은 오지 않을 것임도 잘 알고 있다. 그 도정이 인간의 삶이고, 우리네 인생 아닐까”라고 말했듯 선과 악이 함께 존재하고 미움과 사랑이 겹쳐지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을 눈물겹도록 사랑하고 살아내야 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삶이리라.
정윤희 출판저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