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인구센서스, 이봉원과 숙종
입력 2010-11-11 17:39
지난주 방송된 MBC 월화 드라마 ‘역전의 여왕’에 개그맨 이봉원이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2010인구주택총조사(센서스)의 조사원으로 나온 그는 잡상인 취급하는 정준호와 실랑이를 벌이다 문틈에 손가락이 끼고 만다. 이봉원이 조사원으로 나선 이유를 서럽게 말한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게 마누라 밥 얻어먹는 겁니다∼.”
이봉원은 카메오로 출연해 웃음을 던졌지만 실제 조사원 대부분이 여성이다. 그리 웃을 일도 없다. ‘위 사람은 정부가 승인한 인구주택총조사의 통계조사 요원임을 증명합니다’는 증을 달고 있지만 별로 자랑스럽지 않다. 늘 아슬아슬하다. 조사원이 강도로 돌변할 수 있고, 거꾸로 대상자가 조사원을 강간미수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런 환경이라면 정확한 데이터가 나올 수 없고, 이런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정책이라면 불안하다.
조사원의 사정을 들어보면 일이 너무 많다. 가구를 파악하고, 인터넷 참여를 안내하고, 방문조사하고, 요도(도로와 건물을 표시한 지도)를 그리는 일이 끝없이 반복된다. 5년 전에 한 가구로 분류된 곳을 가보면 다세대를 지어 7가구가 산다. 조사 대상이 늘었지만 별도의 보상이 없다. 사람들이 쉽게 만나주지도 않는다. 일부 공동주택은 안전장치로 인해 출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조사를 당하는 쪽도 유쾌하지 않다. ‘모든 국민은 조사에 성실히 응답할 의무가 있고, 조사 내용은 엄격히 보호한다’는 통계법이 있지만 사생활에 관한 정보가 새지 않을까 걱정이다. 학력이나 혼인관계를 물으면 대충 둘러댄다. 세입자는 14번 항목에서 끝나는 데 엉뚱하게 집주인에게 요구되는 19항목으로 넘어가 항목을 체크하려니 머리에 쥐가 난다. 마지막에 사인하면서 휴대전화 번호를 적으라는 요구도 과하다.
국민들은 왜 이리 센서스를 귀찮아할까. 홍보가 잘못이다. 통계청은 드라마 ‘동이’에서 숙종과 숙빈으로 나온 지진희와 한효주를 홍보대사로 뽑으면서 “숙종이 현재의 인구주택조사와 유사한 호패법을 정착시켰다”고 밝혔지만 국민에게 그게 중요할까. 차라리 이봉원 박미선 커플이 나와 친근하게 속삭이는 게 낫겠다.
이번 조사는 15일로 마무리되지만 5년 후가 걱정이다. IT 강국에 걸맞게 인터넷 참여도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나머지 가구를 대상으로 삼는 방문조사원에게는 보람과 긍지를 느낄 수 있도록 예우해야 한다. 정부는 누구의 희생을 대가로 성과를 얻으려 해서는 안 된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