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중국 위정자들의 리더십은?… ‘조선국왕 VS 중국 황제’

입력 2010-11-11 17:29


조선국왕 VS 중국 황제/신동준/역사의 아침

조선왕조의 시조인 태조 이성계와 명나라를 일으킨 홍무제 주원장은 여러 모로 닮은 구석이 있다.

각각 고려 말과 원제국 말기라는 혼란한 시대상황 속에서 대업을 도모했다. 무력이 있던 이성계가 정도전이라는 책사를 얻어 뜻을 펼칠 수 있었듯, 주원장은 이선장과 유기 같은 탁월한 참모가 있었다.

다른 점도 있다. 주원장은 원제국의 쇠망을 초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홍건적 출신이고, 이성계는 고려의 수도인 개성을 장악한 홍건적을 격퇴하는 데 공헌한 신흥 군벌이었다. 낡은 왕조를 물리고 자신이 새 왕조의 시조가 됐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두 사람의 다른 출발점은 왕조의 향후 방향성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아무 기반 없이 출발한 주원장이 냉정한 판단력과 과감한 결단력으로 막강한 황권을 세운 반면, 고려의 신하였던 이성계는 고려의 유신들을 냉정하게 자를 수 없었다. 이는 훗날 붕당정치를 여는 빌미가 된다. 조선왕조와 명·청나라 때 조선의 왕과 중국 황제들 사이에선 이런 유사점 내지 차이점을 여러 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난세를 돌파하는 위정자의 결단은 때로는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조선 태종 이방원과 명나라 영락제 주체의 삶과 정치 역정도 매우 닮았다. 두 사람 모두 창업자의 뒤를 이을 가장 강력한 후보였음에도 주변의 견제 때문에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이후 건곤일척의 승부수를 던져 힘으로 보위를 차지했다. 비슷한 시기에 보위에 올라 각각 20년 남짓 재위했고 사후의 묘호 역시 태종으로 같다.

고전연구가 신동준씨는 재위 시기와 정치적 상황이 비슷했던 조선 국왕 10명과 중국 황제 10명의 통치 방식과 리더십을 2명씩 묶어 비교 분석한다.

그는 조선 선조와 명나라 만력제를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최악의 군주로 꼽는다. 선조는 조선을 임진왜란이라는 참화 속으로 밀어넣고도 무기력한 모습으로 일관했고, 만력제는 48년 재위 기간 중 25년은 조정에 단 한 번도 나가지 않는 등 정사를 내팽개쳐 명조 패망의 단초를 제공했다.

최근 소장학자들의 노력으로 오랫동안 폭군으로 치부되어온 광해군이 새롭게 평가받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광해군이 통치했던 15년은 청 태조가 후금 건국을 전후로 재위한 기간과 완전히 겹친다. 두 사람 모두 만주와 조선을 대표해 절묘한 외교정책을 펼친다.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이런 상호 협력 속에 청 태조는 새 제국의 기틀을 닦았고 광해군은 비록 도중에 폐위되기는 했으나 중흥의 기반을 닦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반대로 악연으로 엮인 이들도 있다. 인조와 청 태종이다. 인조는 재위 4년(1627)에 정묘호란을 당했고 재위 13년(1636)에 또다시 병자호란을 당했다. 병자호란 때 인조는 삼전도 수항단 아래에서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며 목숨을 구걸했고, 청 태종은 이를 내려다보며 훈계하는 주인공이 된다.

순치제와 비슷한 시기에 재위한 조선 군왕은 효종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통치는 여러 면에서 대비된다. 순치제의 치세 때 중원으로 들어간 청나라는 제4대 황제 강희제가 삼번의 난을 평정한 1681년부터 제6대 황제 건륭제 치세의 중반부에 이르는 청의 최전성기인 강건성세(康乾盛世)의 기틀을 마련했다. 반면 효종은 “명이 망했으니 조선이 유일한 문명국”이라는 공허한 소중화(小中華)에 미혹돼 비현실적인 북벌을 외치며 스스로 망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조선 영조와 정조의 재위기간을 더하면 건륭제의 재위기간과 거의 일치한다. 청에서 건륭제가 강건성세의 대미를 장식했다면 조선에서는 영조와 정조가 실학시대의 전성기를 이뤘다고 평할 수 있다. 청이 건륭제 사후에 쇠락의 길로 들어선 것처럼 조선도 정조가 죽고 나자 외척에 의한 세도정치로 몰락의 길을 걷는다. 이처럼 건륭제와 영조, 정조의 통치는 기간이 길었던 만큼 여러 면에서 비교가 된다. 저자는 “역대 군왕의 리더십을 평가하는 데 명·청의 황제만큼 좋은 비교대상도 없다”면서 “다양한 유형의 리더십을 비교하면 위기를 타개할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