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 외교관의 맵고 쌉싸래한 훈수… “한식, 맛만 좋으면 세계화 된다고?”

입력 2010-11-11 17:31


손창호 / 럭스미디어/한식, 세계를 요리하라

“와우∼베리 굿!” TV를 틀면 상추쌈에 싼 삼겹살을 입안 가득 밀어 넣은 외국인이 엄지를 치켜세우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어디 TV뿐이랴. 할리우드 인기 여배우 기네스 팰트로는 산후 몸매 관리를 위해 비빔밥을 먹었다고 하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점심으로 김치와 불고기를 즐긴다는 뉴스가 쏟아진다.

한식은 그러나 여전히 세계의 주류음식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카메라 앞에선 엄지를 들었던 외국인이 본국으로 돌아가서 한식을 다시 찾았다는 얘기는 좀체 들리지 않는다. 외국에 있는 한식집은 대체로 현지 한국인을 위한 곳이지 그 나라 사람들이 찾는 유명 레스토랑이 아니다. 맛과 영양으로 따지자면 한식의 가능성은 분명 무궁무진하다. 그런데도 한식은 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지 못하는 걸까.

주중한국대사관의 손창호(36·사진) 일등서기관은 세계 30여곳을 드나들며 느낀 경험을 바탕으로 한식의 약점을 과감하게 드러낸다. 신세대 외교관이 쓴 책답게 곳곳에는 외국인들의 한식에 대한 솔직한 비판이 잘 담겨 있다. 책은 김치에서 불고기, 비빔밥, 전 등 한식의 대표 주자들이 세계화의 명제 앞에서는 왜 기를 펴지 못하고 쪼그라들 수밖에 없는지 짚어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우선 우리 주식인 쌀밥부터 난관이다. 그는 찰기 있는 밥이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쌀밥의 찰기 때문에 입안에서 반찬과 쌀밥이 합체된 순간을 즐길 수 있다. 0.1초 동안 햄버거와 같은 결합체가 입안에서 만들어졌다가 없어지는 것이다. 외국인에게는 ‘차진 밥’은 특별히 좋은 느낌은 아니다. 많은 외국인에게 한식을 대접해보았지만 쌀밥을 깨끗이 비운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외국인에게 찰기가 도는 쌀밥의 ‘순간적 합체의 묘미’를 깨우치게 하는 것은 어렵다.”(38∼40쪽)

미리 만들어 놓은 여러 반찬을 늘어놓은 첩첩반상의 전통은 우리식 서빙의 약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식의 특성상 나물과 김치, 젓갈, 조림 등의 반찬은 미리 만들어져 있어야만 한다. 세계의 대부분 식당이 주문 받은 음식을 그때그때 만드는 점과 다르다.

우리는 다양한 반찬을 정성껏 제공하지만 사실은 차갑고 신선도가 떨어지는 음식들이다. 외국인들에게 미리 만들어놓은 ‘콜드 디시’를 권하는 것은 실례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 불판을 앞에 놓고 굽는 갈비와 불고기도 맛은 인정을 받지만 보편성 면에서는 불합격이라고 털어놓는다. 생고기를 식탁에서 굽고 가위로 자른 뒤, 물을 털어낸 상추로 쌈을 싸 먹는 장면은 격조 있는 자리와 어울리지 않는다.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외국여성이 있을 경우 고깃집으로 안내하는 자체가 무리일 수 있다는 것.

한식 메뉴 외에도 한식당의 운영에 대한 비판도 흥미롭다. 맛집이라면 어수선한 분위기와 싸구려 철제 식기, 손님들이 직접 덜게 만든 김치와 물통, 심지어 ‘욕쟁이 할머니’까지 떠올리게 되는 우리 식문화가 과연 옳은지 따져 묻는다. 외국인들은 음식뿐만 아니라 분위기와 인테리어, 서비스 등 모든 것을 즐기려고 맛집을 찾는다. 맛만 좋은 음식을 찾는다면 주문해서 먹어도 된다.

저자는 세계화에 성공한 외국음식의 장점을 분석하고 메뉴판에서부터 주 메뉴와 반찬, 에피타이저(후식)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한식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메뉴의 경우 국과 탕을 버리고 반찬수를 극단적으로 줄여야 하고, 서비스도 전통을 고집하기보다는 세련된 멋을 중시하는 등 등 혁신적으로 변신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아울러 한식의 정의를 전통 음식에 국한시키지 말고 적극적으로 넓힐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아는 미국인이 한식을 무척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무슨 음식을 좋아하냐고 물어보니까 ‘치맥’(치킨과 맥주)이라고 답했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전통 한식과 양념 치킨을 구별하지 못한다. 그의 눈에는 둘 다 한식일 뿐이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만 찾을 수 있는 맛이기 때문이다.”(117쪽)

저자는 또 우리가 높은 생활수준에 걸맞는 식문화를 갖지 못한 점이 한식 세계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한다. 의식주 중 옷과 집은 시대에 맞게 변했는데 식문화만 30년 전의 모습 그대로라는 것이다. 개인적인 취향일 수 있는 의견들이 때에 따라 지나치게 강조돼 있고 생경한 표현들이 눈에 띄긴 하지만 곳곳에는 저자의 한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묻어 있다.

G20 정상회의 중국 측 인사 의전 문제로 귀국해 있던 손 서기관과 10일 연락이 닿았다. 그는 한식에 유독 관대한 우리의 식습관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넷을 보면 스파게티나 피자, 스시에 대한 글이 넘칩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한식에 대한 글은 찾아보기 힘들어요. 이탈리아식 식당을 찾을 때는 분위기, 서비스를 조목조목 따지면서도 막상 한식당에서는 ‘맛만 좋으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거죠. 비판이 없으면 발전도 없습니다. 한식과 우리 식문화를 국민소득 2만 달러 수준에 맞춰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한식을 정말 사랑한다면 우리 음식을 마구 비판해야하지 않을까요?”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