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백화점 붕괴현장서 “사람 살리는 집 짓자” 다짐

입력 2010-11-11 17:25


‘건축, 생활 속에 스며들다’ 펴낸 조원용 건축사

1995년 6월 29일. 서울 서초동 H건축사무소에서 근무하던 A씨는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는 뉴스를 듣고 화를 냈다. ‘한쪽 기둥이 쓰러졌다도 아니고 저렇게 보도하면 백화점이 다 무너졌다는 소리가 되잖아. 저런 선정적이고 과장된 기사가 어디 있담…’ 그런데 사실이었다. 진짜 백화점이 폭삭 주저앉았다. 사고로 501명이 죽고 937명이 다쳤으며 6명이 실종됐다. A씨는 곧바로 자전거를 타고 사고현장으로 달려가 3일 밤을 지새며 구조봉사활동을 했다. 참상을 지켜보며 그는 수천 번도 더 다짐했다.

‘건축이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구나. 난 사람을 살리는 건축가가 돼야겠다.’

최근 ‘건축, 생활 속에 스며들다’(창의체험)란 책을 펴낸 조원용(43) 건축사 이야기다. 지난 8일 만난 그는 “건축이란 단순히 건물을 짓는 일이 아니라, 인간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행복한 삶을 보장하지 못한 건축물은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출입문을 예로 들었다.

“고시원에서 공부를 하는데 불이 난 적이 있어요. 연기를 들이 마시니 정신이 아득해지더라고요. 문쪽으로 뛰어가 본능적으로 문을 밀었는데, 아뿔사. 당겨야 열리는 문이더라고요. 혼자라면 쉽게 당겼겠지만 뒤에서 사람들이 밀려드니 도저히 열 수 없었습니다. 당시 고시원이 사람의 행복을 염두에 두지 않은 건물이었던 거죠.”

그러니까 10인 이상이 사용하는 방의 출입구는 미는 문이어야 한다. 반대로 혼자 쓰는 방은 당기는 문이어야 한다. 누군가 노크를 해 문을 빼꼼히 열어볼 때 당기는 쪽이 몸을 숨겨 프라이버시를 지키는데 용이하기 때문이다.

책에는 사람과 행복을 최우선 가치로 생각하는 조 건축사의 10여년에 걸친 건축 철학이 잘 담겨 있다. 저자는 이 책으로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2010 우수저작상을 받았다.

그는 한옥을 ‘세계 최고의 건축물’이라고 예찬했다. 더운 나라 건축물의 특징인 마루(지면과 바닥을 띄운 형태)와 추운 나라 건축물의 특징인 온돌을 동시에 실현시킨 세계 유일의 창조물이라는 것이다. 또 한옥의 처마는 주춧돌과 30도의 각도를 이루는데, 여기에는 한여름에는 대청마루를 뙤약볕으로부터 지켜주고 한겨울에는 햇볕을 들어오게 하는 과학이 숨어있다는 것이다. 전통 가옥의 처마는 장마철 농기구를 잠시 세워두고 대청마루에 기대 비를 피하게 해주는 지혜의 공간이기도 했다.

저자는 책에서 백화점에는 왜 창문이 없는지, 은행 천장은 왜 높은지, 음악당 천장은 왜 구불구불한지, 휠체어의 작은 바퀴가 건축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등 일상생활에 담긴 건축의 원리를 재미있게 소개한다.

조 건축사는 “건축이 퍼즐이라면 마지막 한 조각은 사람”이라며 “하지만 아직 우리는 사람을 위한 건축물을 짓는 데는 익숙지 못하다. 건축물을 올리는 데에만 치중하지 말고 그 안에 사는 사람을 위한 건축을 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상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