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이끄는 신앙의 지도자] (상) 독일 메르켈 총리
입력 2010-11-10 18:38
겸손·섬김의 리더십 ‘독일판 철의 여인’
“우리가 어떻게 기독교인으로서 정체성을 확립·보존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살아 있는 신앙, 예배의 감격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후세에 신앙 전통을 올바로 전달하기 위해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합니다.”
설교시간에 나온 말이 아니다.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56)이 2005년 하노버에서 공개적으로 한 말이다.
동독의 무신론을 넘어 2005년 통일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된 메르켈. 그는 인간 존엄성과 창조세계 보존이라는 기독교 가치로 포용력의 리더십을 발휘해 ‘독일판 철의 여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앙은 나와 타인에 대한 관용적 시각과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길러줍니다. 제가 만일 무신론자였다면 이 같은 책임의식을 지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1995년 함부르크 ‘교회의 날’ 강연 중)
이처럼 메르켈 리더십의 근원은 숙련된 신학적 사고능력에 있었다. 그는 사회정의를 외칠 때 말라기 3장을 인용하고, 줄기세포 연구를 옹호할 때는 마태복음 9장에 나오는 혈루증 앓는 여인의 이야기를 인용할 정도였다.
이것은 루터교 목사였던 부친의 철저한 신앙교육에서 나왔다. 그는 54년 서독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지만 생후 6주 만에 동독 선교를 목표로 한 부친 홀스트 카스너 목사를 따라 사회주의 체제 속으로 들어갔다. 이런 부친에겐 늘 비밀경찰이 따라붙었다. 그에게 교회는 사회주의 체제 속 엄격한 신앙교육의 장이었다.
86년 라이프치히 대학(동독 카를 마르크스 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메르켈은 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민주개벽’이라는 민주화운동 단체에서 활동했다. 90년 통일 독일 총선거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됐으며, 91년 여성청소년부 장관을 시작으로 환경부 장관, 기독민주당 의장, 유럽연합 의장 등으로 승승장구했다. 그 비결은 신앙에 있었다.
“신앙은 저에게 기도의 능력을 선사하며 부족한 저의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아울러 제가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섬김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줍니다.”
‘그리스도인 앙겔라 메르켈’(한들출판사)의 번역자 조용석 박사는 “메르켈은 우리로 따지면 북한 평양에서 선교하던 목사의 딸이 통일 후 남한으로 넘어와 보수 정당 의장이 되고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된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라면서 “그녀는 기독교인이라 자부하기보다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는 게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지도자”라고 설명했다.
백상현 기자, 신재범 인턴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