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성기철] 브레이크 없는 검찰
입력 2010-11-10 18:10
‘브레이크 없는 벤츠’란 책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1993년 검사 출신 김용원 변호사가 검사 생활에 얽힌 일화와 검찰 내부 얘기를 엮어 펴낸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직접 수사했던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예로 들며 숱한 사건들이 권력층의 압력으로 유야무야됐음을 고발했다. ‘브레이크 없는 벤츠’는 저자가 부산지검에 근무할 때 사건 수사를 아주 잘 하는데 한번 시작하면 멈출 줄 모르고 앞으로 나가기만 해 지검장이 붙여준 별명이라고 했다.
김 변호사는 아마 TV 드라마 ‘대물’에 나오는 하도야 검사(권상우 분)를 연상케 하는 인물 아니었나 싶다. 시골 지청에 근무하는 하 검사는 지청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을 꿈꾸는 집권당 대표의 정치 비자금 비리를 집요하게 파헤치려 한다. 이에 정치권력은 하 검사에게 성 매수와 뇌물수수 누명을 씌워 검찰에서 퇴출시킨다.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도 이들과 비슷한 인물로 분류된다. 그는 11년간 검사 생활을 하면서 노량진 수산시장 강탈 사건, 광주 조직폭력배 소탕 수사, 슬롯머신 사건 등을 맡았다가 권력층으로부터 각양각색의 압력을 받았다. 그러나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 홍 최고위원은 자서전 ‘홍 검사, 당신 지금 실수하는 거요’(1995)에서 “나는 증거만 찾으면 상대가 그 누구더라도 주저하거나 물러서지 않았다”고 했다. 그 결과 ‘모래시계 검사’ ‘한국의 피에트로’ 등 좋은 별명을 얻었지만 현직 고검장을 구속시키고는 검찰 조직에서 더 버티기 어려웠다.
명 검사 출신인 박주선 민주당 최고위원이 검찰의 11명 국회의원 압수수색과 관련, “브레이크 없는 검찰이 수사란 미명하에 정권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고 검찰을 강하게 비난했다. 세 번 구속됐으나 세 번 모두 무죄로 풀려난 적이 있는 사람이라 검찰에 불만이 많을 게다. 그렇더라도 검찰에 브레이크가 없는 것을 무조건 비판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수사를 할 때 검찰 스스로 주변 여건을 고려하는 등 브레이크를 작동시켜야겠지만 외부 권력이 개입될 때는 브레이크를 밟지 말아야 한다.
지금 검찰이 욕먹고 있는 이유는 청목회 수사에서는 브레이크를 밟지 않으면서 민간인 사찰 수사에선 브레이크를 세게 밟고 있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 정치권력이 개입한 것으로 국민들은 보고 있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지 않을 경우 수사는 특별검사 손에 넘어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