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호경] 교회 속 세상, 세상 속 교회

입력 2010-11-10 20:56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사 스폰서 비리 같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거듭 회자되는 베스트셀러 ‘헌법의 풍경’ ‘불멸의 신성가족’으로 유명하다.

법조계의 온갖 부조리와 우리 사회의 부족한 인권 의식을 진중하고 설득력 있게 비판해 많은 독자층을 확보한 그는 매우 독실한 크리스천이기도 하다. 짤막하나마 이 책들에는 자신이 얼마나 ‘기독교 중환자’인지를 소개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냥 기독교인이 아니라 손꼽히게 보수적인 교단 출신으로” “예배 시간에 손을 들고 찬송 부르는 저의 모습을 비디오로 찍어 보도한다면 별다른 편집 없이 그대로 시사고발 프로그램에 내보내도 될 정도”라며 스스로를 ‘꼴통’이라고까지 칭한다.

그런 그가 몇 달 전 낸 근작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는 법률과 법조인에 초점을 맞췄던 전작들과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 교회와 교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967년 생으로 어려서부터 기독교인으로 살아온 자신이 그동안 교회 때문에 느낀 슬픔과 절망을 진솔하고 때로는 뼈아프게 들려준다. 신앙보다는 사회적 지위가 교회 내에서도 목소리를 높이고, 헌금 액수와 교회 건물 규모 등으로 목사의 성공을 평가하며, 시험 합격이나 승진 등의 개인적 출세가 곧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기복적 가치관이 광범위하게 자리 잡은 현실은 이미 교인들에게 무감각해진 세속주의의 단면이다. 당파적 이익을 대변하며 설교시간에 난무하는 거친 좌파·우파 담론들은 또 어떤가. 그는 문제점을 이렇게 요약한다.

“이런 현상은 교회가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사명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세상 속에 있기는 하지만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는 공동체가, 어느새 철저히 세속화하여 ‘교회 속에’ 세상의 가치와 기준이 들어오는 역전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속의 교회’가 아니라 ‘교회 속의 세상’이 되어 버린 세속화된 교회입니다.”

굳이 김 교수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교회가 세속과 다르게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는 거룩한 믿음의 공동체이어야 한다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세속을 뜻하는 영어 profane은 성전 경내를 뜻하는 라틴어 fanum에 접두사 pro가 붙어 ‘성전 바깥’(outside the temple)을 가리킨다. 현대 종교학의 대가 미르치아 엘리아데(1907∼1986)는 저서 ‘성(聖)과 속(俗)’에서 성전 안과 바깥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했다. “교회의 문지방은 교회 안과 밖의 두 세계를 구별하고 분리하는 경계선이다. 이 문지방을 건너 들어간 교회의 성역 안에서는 속된 세계가 초월된다. 세계가 아무리 비정하게 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끊임없이 성전의 신성성에 의하여 정화된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현실은 이와 다르다. 교회 문지방을 건너 들어가도 속된 세계와의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 전체는 아니지만 상당수 교회의 모습이 그렇다는 데 많은 크리스천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신도들이 서로를 모르고 파편화 되어 있는 ‘영화관 교회’도 적지 않다. 기독교 신자 수가 자꾸 감소하는 현실은 그런 세속화와 무관치 않다.

최근 개신교계에 부정적인 소식이 꼬리를 물었다. 특히 한 대형교회의 스타 목회자가 여성 교인을 성추행한 사건은 여진이 아직도 계속된다. 사임에까지 이른 그의 인간적 고뇌와 처절한 절망, 그리고 용기는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허나 그의 일탈은 교회에 대한 사회적 신뢰에 또 다시 큰 균열을 만들었다. 서울과 대구의 유명 사찰에 대한 평신도들의 ‘땅밟기’ 행위 역시 많은 우려를 낳았다. 절대적 신념의 영역인 종교에서 타자에 대한 과격한 무시와 정복욕으로 인한 갈등이 폭발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역사의 수많은 비극들이 증언하고 있다.

절제와 경건, 사랑과 평화의 교회 상이 절실한 시점이다. 교회다운 교회는 그 존재만으로도 정치적이고 실천적이며, 충분히 세상을 바꿀 힘이 있다.

김호경 특집기획부 차장 hk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