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응국 목사를 추모하며-'이 시대 원형질의 복음을 들이댄 거룩한 확신범'
입력 2010-11-10 19:24
지난 7일 타계한 고 김응국 목사, 규장 편집국장이던 그는 평소 회개 없는 구원, 지옥 없는 천국, 성령 없는 교회, 불 없는 설교를 통탄했다. 값싼 은혜가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구원의 도리를 역설하는 복음 전도자였다.
교회 강단에 쇼 엔터테인먼트 공연이 넘쳐나고, 처세술, 행복학, 심리상담의 짝퉁 복음을 전하는 것을 애통해 하며, 오직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원형질의 복음을 불붙는 가슴으로 전하기를 염원한 그는, 사실 땅에 숨겨진 보화 같은 설교자였다. 그의 은사(恩師) 정암 박윤선 박사도 그에게 애정을 기울일 만치 학문적 열의도 남달랐다고 지인들은 입을 모은다.
그런 한편, 그의 인생을 대표하는 수식어는 ‘한국 기독 출판 편집계의 산증인’이다. 규장에서 11년, 기독지혜사와 나침반사 등에서 17년, 통틀어 28년간 그는 주석성경에서 시작해 각양각색의 장르를 아우르는 수백 종의 기독 도서를 기획하고 편집했다. 이동원, 김동호, 오정현과 같은 한국교회 대표 설교자들의 책이 대부분 그의 손을 거쳤으며, 김하중, 손기철, 이용규, 김우현 등 유명 평신도 작가들의 저서들도 그가 편집을 총괄했다.
뿐만 아니라 A. W. 토저, R. A. 토레이, E. M. 바운즈, 찰스 스펄전, 앤드류 머레이, 기타 청교도를 비롯한 외국 유명 설교자들이 그를 통해 현대적으로 되살아났다. 외국 설교자들의 이름을 시리즈 명으로 삼은 규장의 도서들은 모두 김응국 목사에 의한 것이다.
신학생 시절부터 청교도 설교자들과 A. W. 토저, J. I. 패커, 로이드 존스, 레오나드 레이븐힐 등에게 감화를 받았고, 편집자가 된 그는 그들의 오랜 책을 이 시대 언어로 생생하게 되살려내겠다는 사명을 충실히 감당해왔던 것이다. 또한 기독 편집자로서, 한국교회를 향한 절절한 애통과 열정을 기독도서 편집 사역에 모조리 쏟아붓고 승화시켰다. 그리하여 그는 불현듯 갔지만, 그가 편집한 책들은 주님 다시 오실 날까지 살아남아서 우리에게 오래도록 읽힐 것이다.
특히 그의 유작(遺作)이 된 '십자가'와 '부활'은 한국교회가 잊고 지냈던 십자가를 그 중심에 복귀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책이라 두고두고 권할 만하다. 십자가가 기독교 신앙의 뿌리요 은혜의 수원지(水源池)이건만, 안타깝게도 액세서리 수준으로 전락해버린 현실을 깊이 통탄하고 십자가의 본질과 실생활에 대한 적용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책을 통해, 자아를 우상으로 삼는 시대에 '나를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임을 재조명하고, 오직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롬 1:16)고 굳게 믿는 ‘거룩한 확신범’이 되기를 자처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함(고전 1:25)을 절감하고 미련한 십자가,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는 십자가를 자랑하기로 굳게 결심한 것이다.
그는 오늘날의 기독교가 ‘부(富)와 번영의 복음’, ‘자기계발의 복음’이라는 사이비 복음에 현혹되는 것을 애통해 하며 ‘본향(本鄕) 찾는 나그네’와 같은 심정으로 이 시대에 원형질의 십자가 복음을 들이댄 사람이다.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인 십자가(고전 1:24)만이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며, 죽어가는 교회를 소생시킬 수 있음을 역설했다.
무엇보다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생생하게 규명하려 힘썼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드라마처럼 묘사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십자가가 나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신분을 주며, 어떤 능력을 주는가에 집중했다. 그 자신이 예수와 더불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자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좇는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핏덩이와 살점을 나누려고 했다.
그는 총신대 신학과와 합동신학원(2회)을 졸업했다. 보수적이고 말씀을 중시하는 개혁주의 신학의 정통을 물려받은 것이다. 그래서 그가 최근 들어 말씀과 성령의 조화를 이루는 신앙생활에 매진했다는 사실은 그의 신학 배경을 알던 이들에게 특별한 소식이었다. 그 계기는 필자가 대표로 섬기며 그가 함께 일해온 규장의 영적 변화와 무관하지 않았다.
김우현 감독의 '하늘의 언어'에 실명으로 공개된 그의 체험적 변화는 성령의 불길처럼 급진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말씀으로 되돌아가고 말씀으로 확증하고 영적 균형을 잡아가는 점진적 탐구 과정이기도 했다. 나 또한 그의 집무실을 수시로 드나들면서, 하루 중에 그와 더불어 성경을 토론하고 성령님이 베푸신 은혜를 서로 나누는 시간이, 회사 일을 의논하는 시간보다 더 길어질 때가 많았다.
그는 성령 체험 이후 새벽마다 3시간 가량을 기도하며 말씀을 연구하고 수많은 지인들을 위해 중보하는 삶을 지속했다. 회사 일과 대표자와 직원들과 그 가족까지 아우르는 기도를 빼놓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또한 기도를 통해 성경적인 은사 신앙의 향방을 모색하는 한편, 성령은커녕 말씀마저 희소해진 한국교회를 일깨우는 책을 출판하고 편집하는 사역을 위해 밤 새워 기도하고 공부하는 날이 많았다.
자신의 안녕보다 하나님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던 김응국 목사. 교회가 향우회나 동창회처럼 사람들의 사교장이 되어 결국은 부조공동체로 전락하는 것을 슬퍼하여, 교회 내의 불신자들을 예수 믿도록 눈물로 설복하던 눈물의 전도자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우리 속에 있었다.
그는 또한 필자 곁에도 살아 있었다. 나는 명목상으론 그의 직장 대표이지만 나이로는 띠 동갑 아래이다. 그럼에도 그는 언제나 나를 존중하며 성심껏 대했고 우리는 나이와 직책을 뛰어넘어, 마치 친구처럼 우정을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사이였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다는 현실이 당황스럽고 안타깝기만 하다.
사실 그는 지난 9월 신체 일부에 수술을 받았다. 성공적인 수술이라 하여 곧 회복되리라 기도하고 기대했건만, 오랜 지병으로 지치고 허약해진 그의 육신은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의 영혼을 주님이 받으신 것이다. 우리는 비록 그를 보낸 것을 슬퍼하지만, 그가 '부활' 책에서 상상으로 풀어준 이야기처럼, 지금쯤 천국에서는 마치 갓 태어난 아기를 박수치며 맞이하듯 그를 환영하는 잔치가 한바탕 벌어지고 있을 터이다. 그리고 언젠가 주님께서 부활 승리하시는 그날, 우리는 함께 주님을 영접하며 재회할 것이다.
그러나 지상에 남은 나는 벌써부터 그가 그립다. 개인적으로 인생과 사역의 동반자요 기도의 동역자라서만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기둥 같은 일꾼을 먼저 부르신 하나님의 속뜻은 감히 여쭐 수도 없다. 그러나 그를 그동안 우리 곁에 두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다.
고인의 장자(長子)는 필자에게 “우리 아버지 잊지 말아주세요. 그래야 우리 아버지 오래 살아계실 거예요” 하고 부탁했다. 물론 잊지 않을 것이다. 어찌 잊겠는가? 그런데 지금 천국에서 고인은 자신이 기억되기를 원하기보다, 평소처럼 이렇게 말하고 있을 것 같다.
“하나님나라와 그 의를 위해 우십시오. 언제나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면서, 날마다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여진구 규장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