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은미희의 전도여행] 낮은 곳서 낮은 자세로… 복음은 사랑입니다

입력 2010-11-10 17:12


② 인도 선교사들의 헌신 현장

소설가 은미희(50)씨가 인도 선교여행에 나섰다. 바울처럼 문필에 능한 그의 글은 먼지 폴폴 날리는 거리의 풍경과 소박하게 살아가는 인도 사람들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인도는 영국 식민지배의 영향으로 성서가 일찍이 전래됐다. 그러나 우상의 숲에서 기독교는 소멸되어 가는 형국이다. 인도 남부 벵갈루루를 중심으로 선교사역을 펼치고 있는 정운삼 선교사를 돕는 안산 한마음교회(이경석 목사) 일행과 합류한 그의 선교여행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이튿날. 우리는 죽음과도 같은 깊은 잠을 잤다. 그 곤한 잠에 꿈은 없었다. 육신의 피곤함은 다디단 잠 속으로 우리를 끌고 들어갔고, 우리는 행복한 잠 속에 기꺼이 함몰되었다. 그 잠을 깨운 건 우렁찬 닭소리였다. 밖은 아직 어두웠고, 새벽이 오려면 한참 더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홰치는 닭소리는 기운차게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하나둘, 그 소리에 잠에서 빠져나왔으나 우리는 이불 속에서 잠의 달콤한 여운을 즐겼다.

하지만 그마저도 오래가지 않았다. 어디선가 땡강땡강, 종치는 소리가 다시 어둠을 흔들고 잠을 방해했다. 소리는 어둠 속에서 더 그악스러웠다. 무슨 소리이기에 저리 이른 새벽부터 단잠을 깨우는 걸까. 우리는 어둠 속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가까이에 있는 이슬람교 사원에서 새벽 예배를 알리는 소리였다.

그렇게 한 식경쯤 지났을 것이다. 이번에는 ‘사우스 인디아 바이블 칼리지’에서 새벽 예배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드디어 새로운 하루가 시작이 된 것이다. 통성으로 주를 부르짖는 소리가 그 새벽을 열고 있었다. 언어는 달라도 진리의 말씀은 하나로 통하나니 피부색이 다르고, 모양새가 달라도 하나님을 부르짖는 마음과 갈급함은 같았다. 그 부르짖음 속에서 진심이 읽혀지고 느껴졌다.

우리 일행은 숙소에서 적묵하게 앉아 각자의 기도로 아침을 시작했다. 기도로 시작되는 하루는 건강하고 활기찼다. 새벽의 알싸한 공기가 콧속으로 상쾌하게 파고들었다. 전날 집회에서 이경석 목사가 전했던 ‘마지막 세상을 어떻게 준비하나’란 설교가 새삼 상기되었다.

“참된 종교는 평화롭고 사랑이 넘쳐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가장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정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평화롭고 사랑이 넘쳐나는가. 곳곳에서 테러가 난무하고, 우리 스스로 목숨을 분절시키고 있으며, 무욕으로 낮아져야 할 종교는 본연의 사랑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고 반성해야 할 일이다.

신경수 목사의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비롯해 이인숙 전도사의 ‘신약에서의 기도치유’, 이귀아 사모의 ‘육하원칙 기도 방법’, 하승용 목사의 ‘기도의 순서’ 등 기도치유아카데미 초급반 과정인 이번 강의는 모두 12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오전 8시. 강의를 듣기 위해 학생과 목회자들은 강의실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번 과정에 참여한 학생 가운데 눈길을 끄는 학생이 있었다. 커다란 몸피에 표정은 당당해 보였지만 어딘가 움직임이 조심스러워 보였다. 알고 보니 그는 눈이 보이지 않았다. 프레드릭(41)이었다. 눈 뜨기를 소망했지만 그는 이미 많은 것을 보고 있었다. 세상에 대한 과도한 욕망으로 눈을 뜨고서도 많은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보다 그는 진정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고 있었다.

교육이 매우 타이트하게 진행되는 바람에 피곤할 만했지만 학생들과 인도 전역에서 온 목회자들은 시종일관 열성적인 표정들이었다. 그렇게 새벽부터 시작된 기도와 강의는 집회까지 포함해 밤 11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간간이 반가운 얼굴도 눈에 띄었다. 한국에서 온 선교사들이었다. 그들의 면면과 활동은 다양했다. 빈민가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이희운 선교사와 임진재 전도사, 도마학교에서 교목을 맡고 있는 유창무 선교사, 그리고 해군으로 복무한 뒤 전역해서 인도로 들어와 평신도로서 전도에 힘쓰고 있는 이양민(65) 장로·장동선(61) 권사 부부. 그들은 한결같이 복음은 사랑이라고 말했다.

“인도에서의 사역은 참으로 힘이 들지만 그래도 보람은 있습니다.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면 정말 좋은 자리는 우상이 다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게 아쉽죠. 게다가 아직 카스트 제도가 남아있는 인도는 기독교가 들어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자칫 계급사회가 무너질 수도 있으니까요.”

이희운 선교사의 말이다. 그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먼 길을 달려와 늦은 시각까지 강의를 듣고 돌아갔다.

특히 이양민 장로는 자신의 적은 연금을 쪼개어 재정이 열악한 교회를 돕는 한편 한 초등학교에 영어 교사를 초빙해 그의 월급을 주고 있었다.

아직 카스트 제도가 남아있는 인도에서는 불가촉천민으로 불리는 계급은 교육의 기회를 받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특히 영어의 경우는 더 심한데 영어를 모르면 직장을 구하는 데 있어서도 커다란 불이익을 받게 된다. 가난이 대물림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를 안쓰럽게 여긴 이 장로는 주로 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영어 선생을 초빙하도록 하고 그 월급을 자신의 연금에서 주고 있는 것.

“인도는 아동 선교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 아이들이 집에 돌아가 하나님 말씀을 전하면 부모들은 자연히 기독교에 호의를 갖게 되고 그러면 교회에 나오게 됩니다.”

이 장로의 말이다. 아동 선교에 있어서 유창무 선교사 역시 힘쓰고 있다. 유 선교사는 현재 도마학교에서 교목으로 사역하고 있다. 현재 850명이 다니고 있는 학교를 2000명이 다닐 수 있는 학교로 만들 계획으로 열심히 기도 중이다. 이를 위해 태권도를 도입하는 한편, 다양하고도 효과적인 전도활동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기도센터이다.

“현재 성인에게만 주는 세례를 초등학교 학생들에게도 줄 계획입니다. 아동 선교를 통해 자연스럽게 부모가 기독교에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한국에서 온 선교사들은 사우스 인디아 바이블 칼리지 학생들을 비롯해 인도 현지의 목회자들과 함께 자리를 지키며, 찬양하거나 기도하면서 기도치유 아카데미 강사진들의 강의를 경청했다.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인도에서의 선교체험을 듣는 시간은 즐겁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그날 밤 나는 반세기 전의 대한민국을 생각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동란 이후 참혹했던 시절, 대한민국에 기독교는 무엇이었는가. 그 대답은 우리 스스로가 찾아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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