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아테네 한식당 ‘도시락’ 운영 유근길씨 “덤으로 얻은 인생 이웃에게 돌려줘야죠”
입력 2010-11-10 17:12
그리스 아테네에는 한식당이 3개 있다. ‘도시락(都市樂)’은 그중 하나다. 지난주에만 아테네 중심가의 ‘도시락’을 세 번 찾아갔다. 처음엔 한 외교관의 초청으로, 그 다음엔 비빔밥을 먹으러, 마지막엔 주인장이 그리스에 눌러앉게 된 사연이 궁금해서 찾아갔다. 주인 유근길(59)씨는 180㎝의 키에 서글서글한 눈매가 돋보였다. 메가폰을 잡은 영화감독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유씨는 “인터뷰할 것도 없어요”라고 했다가는 “커피 드릴까 아니면 주스 드릴까”라며 30년 이민사를 풀어놨다.
유씨는 MBC 단역배우 출신이다. 중앙대 연극영화과 재학 당시 연극 무대에도 섰고 TV 드라마의 단역배우로도 얼굴을 비췄다. 중견배우 서인석 안병경씨가 유씨의 대학 동기다. 제대 후 가세가 기울어 동대문시장으로 뛰어들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배우 유근길이었다.
동대문 원단 장사는 온 가족이 매달린 가업이었다. 유씨는 원단 장사 일을 하며 박윤혜(58)씨와 결혼했다. 큰딸을 낳았다. 이듬해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고, 그 다음해 5·18 광주민주화항쟁이 터졌다. 정치적 격변기에 경제난도 겹쳤다.
“이러다 다 망하겠다 싶었어요. 한 사람이라도 피해 가자는 생각에 그리스 이민을 결심했죠.”
간호사들은 독일로, 노동자와 건설업자들은 중동으로 떠나던 시절, 그는 친척의 초청으로 그리스행 티켓을 끊었다.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1년간 한국 그림과 토산품을 팔았다. 그러다 목돈을 마련하고자 1981년 한식당을 열었다. 교민은 60여명뿐이고 그리스인은 한국음식에 관심도 없으니 식당엔 파리만 날렸다. 월남 난민(보트 피플)들이 그리스로 대거 입국하면서 그들을 데리고 중식당을 개업하자 장사는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불법 체류자 신분은 늘 조마조마했다. 둘째 딸이 네 살이 되던 84년에야 정식 비자가 나왔다.
돈 버는 재미로 살았다. 관광지 수니온 해안 가는 길의 매머드급 중식당 ‘징기스칸’이 대박을 터뜨리면서 그는 그리스에 온 목적을 달성했다. 한국인 선원 8000명을 고용한 그리스 선주에게 선식도 납품하면서 돈을 긁어모았다. 하루 2∼3시간만 자도 피곤한 줄 몰랐다. 무섭게 벌어 매년 집을 한 채씩 샀다.
그러다 쓰러졌다. 93년 유씨는 심근경색으로 수술대에 올랐다. 부인 박씨가 기도로 밤을 지새울 때 유씨는 인생을 ‘덤’으로 얻었다.
“개과천선했죠.”
행색이 누추한 손님을 문전박대하던 그가 사람답게 살겠다며 180도 달라졌다.
“시가 시가. 그리스어로 천천히 천천히란 말이에요. 쫓기듯 살아온 지난날을 되돌아봤죠. 그리고 사람답게 사는 게 뭘까 생각해봤어요.”
덤으로 얻은 인생이 너무도 아름답고 감사해 주일마다 교회 예배에 출석했다. 처음엔 예배만 출석하다 봉사활동에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슬럼가에서 아프가니스탄 난민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일을 맡고 있다. 잊었던 꿈을 다시 펼칠 기회도 주어졌다. CF모델로 섭외가 들어온 것. 출연비야 70∼80유로로 적었지만 그에겐 연기의 장이었다.
그 사이 큰딸은 파리대학 교수가 됐고 프랑스 남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둘째 딸은 파리에서 생태학 석사를 마치고 그리스 수목원에 취직해 유씨 부부 곁으로 왔다.
유씨는 그리스인이다. 2000년 시민권을 받아 교민 중 몇 안 되는 그리스인이 됐다. 호적에서 말소된 자신의 기록을 보면 서글프다가도 그리스의 바다를 바라보면 가슴이 벅차오르는 그다.
그는 61세에 은퇴할 생각이다. 그에겐 꿈이 있다. 시체역이라도 좋으니 고국에서 연기를 하는 것. 그리고 전 세계를 돌며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
“사람다운 게 뭐예요. 그게 결국은 사랑이에요.” 유씨에게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봤다.
아테네(그리스)=글·사진 이경선 기자 boky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