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창조질서의 창문' 청파교회 햇빛발전소를 들여다봤더니

입력 2010-11-10 16:38


[미션라이프] 독일 남서부 쇤아우. 인구 2600여명에 불과한 조그만 도시. 이 곳에 있는 한 교회의 옥상은 매일 낮 햇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햇빛발전소가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햇빛 발전 모듈에 빛이 반사될 때면 교회 옥상의 십자가는 더욱 빛나 보인다. 그곳 사람들은 발전소를 ‘창조질서의 창문’이라 부른다. 이 마을 사람들은 그 ‘창문’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구현했고, 아울러 에너지 독립도 이뤘다.

서울에도 ‘창문’이

지난 4일 지하철 1호선 열차를 타고 서울역에서 남영역 방향으로 가며 창밖을 바라봤다. 순간 ‘반짝’하는 것이 스치듯 지나갔다. 남영역에 내려 그 빛이 있었던 곳을 더듬어 따라갔다. 그곳은 꽤 오래돼 보이는 교회 옥상이었다.

서울 청파동 3가에 위치한 청파교회. 이 교회 지붕에는 태양광 발전 모듈이 설치돼 있었다. 3㎾급 모듈이 빨아들인 햇빛을 연신 내뱉고 있었다.

청파햇빛발전소. 지난 2007년 11월2일, 이 교회 100주년을 기념해 건립됐다. 교회 지붕 위 햇빛발전소…. 어떻게 구상을 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평소 환경에 관심이 많았던 이 교회 김기석 담임목사는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프란츠 알트의 ‘생태주의자 예수’를 읽고 재생에너지로 에너지 독립을 이룬 쇤아우의 사례를 국내에 가져오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그곳 교회처럼 ‘창문’을 하나 만들자고 교인들을 설득했죠.”

김 목사는 예수의 섬김, 나눔, 돌봄 그 자체가 생태적 가치라 했다. 생태계에 부담을 주지 않는 삶이 바로 예수적 삶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햇빛발전소는 예수의 삶을 현대적으로 구현하는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처음 햇빛발전소를 만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교인들은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보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 온 목사의 말에 이내 수긍했다.

교회 옥상에 올라가봤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검정색 패널이 서 있었다. 김 목사가 설명했다. “볼품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이 햇빛발전소가 30년 된 나무 200그루가 서 있는 것과 같은 효과를 냅니다.” 햇빛발전은 햇빛으로 에너지를 생산하기 때문에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 않으면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 않는다. 햇빛발전소 덕에 발생하지 않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나무 200그루를 심었을 때의 효과와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햇빛발전은 태양전지를 이용하여 태양빛을 직접 전기에너지로 변환시키는 발전방식이다. 공해가 없고, 필요한 장소에 필요한 만큼만 발전할 수 있으며, 유지 보수가 쉽다는 게 이 방식의 장점이다.

청파햇빛발전소를 통해 전기를 얻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태양전지의 전극에 햇빛이 닿는 순간 햇빛발전소의 전극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전류를 발생시킨다. 이때 직류전류가 생긴다. 직류전류는 전력변환장치(인버터)를 통해 교류전류로 전환된다. 가정에서는 교류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변환된 교류전기가 전깃줄을 타고 가까운 전봇대로 흘러가 청파교회에 전달되는 구조다.

나눔의 창문

“교회는 베풂과 나눔의 공간, 사랑을 실천하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어지럽히지 않으면서 주위 사람들과 전기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함께 나누기 위해 햇빛발전을 구상한 것입니다.”

청파교회는 이 ‘창문’을 나눔의 창문으로 쓰고 있다. 이 교회는 발전소를 통해 나온 전기로 여러 가지 형태의 나눔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청파햇빛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한달에 300㎾. 이 전기를 한국전력에 다시 팔아 얻는 이익금이 매달 약 21만원 정도다. 1년으로 따지면 약 300만원이다.

발전소를 만들고 감사예배를 드린 뒤 가장 먼저 김 목사와 교인들이 고민한 것은 이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 게 하나님 뜻에 합당할까 하는 것이었다. 다양한 의견이 나왔지만 에너지 빈곤층 돌봄 기금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르지 않은 채 전기를 만들어 얻은 이익금을 에너지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돌려주자는 취지다. 전기세를 내지 못해 단전된 가정이나 연탄이나 석유를 사지 못해 차디 찬 방에서 겨울을 보내야 하는 가정 등이 대상이다.

“우리 주변에 전기세조차 내지 못해 차가운 방에서 오들오들 떨며 겨울을 견뎌내야 하는 이웃이 의외로 많습니다.”

올 초 이익금을 청파동사무소 측에 전달할 때 그 얘기를 듣고 김 목사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쌀과 연탄 등을 불우이웃에게 주는 것도 매우 가치 있는 일이지만 이런 형태의 나눔 역시 좀 더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이 교회는 햇빛발전소로 얻은 전기를 교회에서만 사용하지 않는다. 교회와 전봇대를 공유하는 인근 가정과 전기를 나눠 쓰고 있다. 김 목사는 “교회 옥상에서 발전을 하는데 그 교회만 사용한다면 의미가 없죠. 어떻게든 이웃과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교회 밖으로 나오면서 입구에 있는 전자게시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현재 햇빛에너지가 얼마나 전기로 생산되고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게시판에는 현재발전량과 일일발전량, 누적발전량, 그리고 햇빛발전으로 감소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 게시판 역시 햇빛발전소에서 얻은 전기로 가동된다.

매번 옥상에 올라가 발전소를 볼 수는 없기 때문에 교인들은 이 게시판을 보며 뿌듯해 하기도 한다. 이나래(25)씨는 “햇빛발전소는 교인들이 십시일반 모은 기금으로 만들어졌어요. 교회가 지향하는 ‘생명과 평화’의 뜻에 교인 모두가 실제적으로 동참한 것이라 의미가 있고 볼 때마다 기쁩니다”라고 했다.

김 목사는 점점 더 많은 햇빛발전소, 녹색교회가 생겼으면 했다. 삭막하고 답답한 도시에 함께 푸른 숨을 불어넣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청파햇빛발전소의 건설과 운영은 우리 교회들이 어떠한 곳에 눈을 돌려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창문 역할을 할 것이라 봅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조국현 기자 jo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