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선 약사의 미아리 서신] 붕어빵 좋아하던 수진씨 결혼해서 잘 살겠죠?

입력 2010-11-10 17:08


가을과 겨울이 하루에 들어있는 오늘도 행복하셨는지요?



바다를 닮아 맑고 큰 눈에 물이 잔뜩 들어있는 수진씨가 지금 어떻게 사는지 많이 궁금하시죠?

관절염 치료를 받으면서 부지런히 붕어빵을 사 나르던 그녀가 관절염으로 오랫동안 고생하시다 돌아가신 어머니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그녀의 심장, 저 깊이에 자리하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얽히고설킨 기억이 그녀를 아주 많이 힘들게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엽고 불쌍하지만 이해할 수 없었던 어머니를 향한 무거운 애정이 남들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사는 그녀를 깊은 무게로 누르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녀 어머니도, 그녀도 밀물에 밀려온 해초처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살아졌고 지금도 살아지고 있는 삶을 어찌할 것이냐고 저는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의 형상을 따라 만든 귀한 존재라고 그러니까 더 이상 자신을 미워하지 말고 아픈 상처들을 치료하여 이제는 정말 건강해져야 한다고, 몸과 마음이 모두 씩씩해져야 한다고 수진씨를 열심히 설득 하였습니다. 붕어빵을 만들어 파시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그녀에게 계속 붕어빵을 사게 하였지요. 그날도 변함없이 약국에 붕어빵 봉지와 함께 들어서던 그녀는 조제실 뒤편에서 두런두런 나는 말소리에 누구냐면서 궁금해 하였지요. 제가 섬기고 있는 교회에서 겨울방학이면 아이들에게 수학 과목을 가르치곤 하였는데 그때 수업에 못 온 아이들을 데리고 나머지 공부를 시키고 있었답니다. 그런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니 그녀는 빙그레 웃더니 지갑을 열어 약간의 돈을 꺼내 주면서 아이들에게 따스한 밥 한 끼 사주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녀의 따뜻함이 참 고마웠습니다.

그녀가 내놓은 돈으로 아이들과 함께 맛있는 돈가스를 먹었지요. 그렇게 그녀와 나 그리고 하나님과의 귀한 인연이 이어지게 됨은 참으로 기쁜 일이었습니다.

그녀가 물리치료를 열심히 받고, 치료제 복용도 꾸준히 하면서 건강이 많이 좋아지게 되었습니다. 춥고 힘들었던 겨울이 가고 붕어빵 장수들이 거리에서 하나둘씩 사라지고 햇살 환한 봄이 오기 시작하면서 수진씨의 얼굴에도 봄꽃이 환하게 피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에게 온 봄소식은 무엇인지 궁금하였으나 자세히 물어볼 수는 없었답니다. 혹시라도 그녀의 자존심을 다치게 할까봐 제가 먼저 물어보는 일은 할 수 없었습니다.

핏기 없이 하얀 수진씨의 화장 지운 맨얼굴을 처음 보았을 때 마음이 아리하게 아파왔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무엇을 물어볼 수가 없었지요. 아주 조금만 건들기만 해도 와르르 무너질 것처럼 그녀는 그렇게 위태롭게 버티고 있었으니까요. 왜 제 눈에 그런 그녀의 먹먹한 슬픔이 들어왔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복숭아꽃처럼 환하게 피어나는 그녀의 얼굴이 좋아보였으나 한편으로는 왠지 모르게 걱정도 되었답니다.

하루는 그녀가 하얀 볼을 발갛게 물들이고 새색시처럼 수줍게 웃으면서 곧 결혼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갑을 열어 보여주는 사진 속의 남자는 작은 눈에 미소가 선량한 청년이었습니다.

그가 어디 사는지, 무엇을 하며 사는 사람인지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인상이 참 좋아 보인다는 이야기에 그녀는 배시시 웃음 지었지요. 그녀의 웃음이 남아있는 약국에서 저는 또다시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녀를 안아주시고 품어주신 하나님 아버지 고맙습니다. 그 어떤 웃음도, 그 어떤 즐거움도 자기 몫이 아니라면서 끊임없이 자신에게 생채기를 내면서 살아왔던 그녀에게 이제 허락하신 큰 행복에 감사드립니다. 그 무엇보다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를 가슴으로 안게 되고 사랑하게 되었음에 감사드리며 그리하여 내팽개치고 살았던 그녀 자신을 돌아보며 어루만지고 보듬어 안을 수 있게 됨에 감사드립니다.

그녀의 결혼 준비는 차근차근 진행되었습니다. 그녀의 가게에서 부엌일을 도와주는 주방이모께서 이것저것 도와주셨습니다.

그녀에게 제가 준 결혼선물은 작은 성경책이었습니다. 결혼을 하여 새로 만나게 될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녀를 지켜주고 품어주실 것이라고 그녀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녀가 열에 들떠 쓰려졌을 때도 제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했음을 이야기했고, 그녀의 결혼 이야기를 처음 듣던 날에 제가 어떤 기도를 하나님께 올렸는지 서로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를 지키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함께 품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며, 잘 살고 있을 수진씨가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랍니다.

이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