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경찰청 제2기동단 9기동대 박선희 경감 “섬기는 시민의 지팡이 돼야죠”

입력 2010-11-10 17:15


지난 8일 오후 서울 세종로 주한미국대사관 앞. 분위기는 삼엄했다. 기동대원을 가득 태운 경찰 버스들이 대사관 주위를 촘촘히 둘렀다. 매서운 칼바람까지 몰아쳐 을씨년스러웠다. 그때 길 건너편에서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키가 큰 여경이 눈에 들어왔다. 경찰 복장에 환한 웃음. 왠지 잘 어울리지 않는 듯했지만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오며 씩씩하게 말했다. “약속 시간을 급히 변경해 죄송해요. 다음날 출동 일정이 전날 밤늦게 정해지기 때문에 약속 지키기가 쉽지 않아요.”

서울지방경찰청 제2기동단 9기동대(여경기동대) 소속 박선희(30·여) 경감. 어깨 위 무궁화 두 개가 유독 반짝였다. 지난해 승진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열심히 기도하며 준비했기에 자신 있었다고 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을 찾았다는 박씨.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자신이 있다며 밝게 웃었다.

긴장되는 G20, 하지만 걱정 없다

“10일부터는 비상근무체제에 들어가요.”

2010 서울 G20 정상회의를 코앞에 둔 이날 박씨는 인터뷰 중에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무전기는 계속 “삐삐” 소리를 내며 목소리를 내보냈다. 전화벨도 쉬지 않고 울렸다.

G20 정상회의는 박씨와 같이 경비 업무를 맡고 있는 경찰에게 매우 중요하고 긴장되는 행사다. 박씨가 속한 기동대는 20개국의 정상, 국제기구 수장 등 주요 인사들이 이동하는 길목을 지킨다. 시위대 난입 등의 불상사를 막아야 한다. 갑자기 발생할 수 있는 반대집회가 커지지 않도록 제어하는 것도 그의 중요한 역할이다. 주요 인사들이 회의를 마치고 돌아가기까지 조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경찰은 국가의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007 영화의 한 장면에 출연하는 듯한 긴장감을 느껴요. 스트레스도 상당하죠.”

하지만 박씨는 좀 달랐다. “근데 저는 두렵지 않아요”라며 방끗 웃었다. 어린 시절부터 기도하는 습관이 들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하나님이 계시니 아무리 긴장되는 상황일지라도 맡은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저뿐만 아니라 곳곳에 기도하는 경찰들이 있으니 이번 정상회의도 사고 없이 잘 치러질 겁니다.” 그는 확신했다.

2008년 촛불집회 현장. “촛불집회 당시 거의 매일 오전 7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종로, 광화문 바닥을 뛰어다녔어요. 돌멩이가 머리 위로 날아다니고 시민으로부터 욕도 바가지로 먹었어요.” 40명의 부하를 거느리는 기동팀장으로서 고민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경찰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욕먹는 게 참 힘이 듭니다.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제가 더 낮아질 수 있는 계기로 삼아주세요.”

처음엔 ‘생전 처음 본 사람들이 나한테 왜 욕을 하는 거야’라는 부정적인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매일 아침 기도를 하면서 서서히 낮아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스스로를 낮춘 뒤 차분한 마음으로 작전에 나설 수 있었다. 시위대와의 실랑이도 줄어들었고 일부 시위자와는 농담을 섞기도 했다. 그는 용산 참사 당시에는 집회 장소에 설 때마다 기도했다. 집회를 막는 과정에서 유가족의 아픈 마음이 더 커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유가족 어머니들의 손을 잡고 그들을 위해 남몰래 기도했어요.”

여성의 힘을 발휘하다

2004년 경찰대를 졸업하고 경위로 경찰 생활을 시작한 박씨. 가장 보람 있었던 기억을 물었다.

올해 초 서울 서초경찰서 여성청소년계장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중학생 하나가 같은 반 학생이 물건을 훔칠 때 망을 보다 방조 혐의로 함께 입건됐다. 입건된 학생의 어머니는 ‘아들의 잘못이 아닌 자신의 잘못’이라는 취지의 반성문을 A4 용지 두 장에 빽빽하게 써와서 박씨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20대 후반 여경의 말이 위로가 될까’ 하는 의문을 스스로 가졌다. 그래도 박씨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어머니를 위로하려 애썼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자신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큰 위로를 받는 것을 느꼈다.

문제가 해결된 뒤 다시 사무실을 찾은 그 학생의 어머니. “너무 감사합니다. 저와 툭 터놓고 많은 얘기를 나눴던 게 제게는 정말 큰 힘이 됐습니다.” 박씨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자신의 말 한 마디에 힘을 얻는 사람이 있다는 게 너무나 기뻤다.

성매매여성들을 상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검거돼 온 대부분의 여성들이 박씨의 손을 잡고 눈물 흘리며 자신의 억울한 사연, 안타까운 마음을 털어놓았다.

“많은 사람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입니다. 경찰이야말로 여성의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발휘될 수 있는 곳입니다. 부드러움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섬기는 경찰이 될래요”

“항상 겸손하게 다른 사람을 섬기면서 일하는 게 가장 큰 목표입니다.” 그는 ‘시민의 지팡이’답게 국민을 온전히 섬기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또 조직 내부에서는 상사와 부하를 섬기고, 만나는 모든 사람을 섬기면서 경찰 생활을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또 하나의 꿈은 교대근무 때문에 예배에 참석하기 쉽지 않은 기동대원을 위해 조그만 신앙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서울 사랑의교회에 출석하는데 근무가 많아 두 달에 두 번 정도 주일에 쉴 수 있습니다. 부대를 이끌어가는 지휘관으로서 신앙 공동체를 만들라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합니다.” 박씨는 곧 모임을 만들 예정이다. 부대원과 함께 인터넷예배를 드리고 성경공부를 하며 좀 더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기회를 가질 꿈을 꾸고 있었다.

글 조국현 기자·사진 이병주 기자 jo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