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이끄는 신앙 지도자(상)/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
입력 2010-11-10 16:11
11일부터 주요 20개국 정상들이 서울에 모여 세계경제 성장을 위한 공조와 개도국 개발, 글로벌 금융 안전망 구축 등을 놓고 논의에 들어간다. G20을 이끄는 지도자 중 신앙을 통해 자신의 삶을 재정립하고 기독교 가치관을 실천하는 신앙인을 소개한다.
“우리가 어떻게 기독교인으로서 정체성을 확립·보존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살아있는 신앙, 예배의 감격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후세에 신앙의 전통을 올바로 전달하기 위해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합니다.”
이 말은 설교시간에 나온 게 아니다. 독일 총리이자 유럽연합의 지도자 앙겔라 메르켈(56)이 2005년 독일 하노버에서 공개적으로 한 말이다.
동독의 무신론 체계를 거쳐 2005년 통일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된 메르켈. 그녀는 인간 존엄성과 창조세계의 보존이라는 기독교 가치에 따라 가족복지, 이민자, 동성애자, 생명윤리, 이라크 전쟁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 공개 토론을 주도해 나갔으며, 이를 통해 총리로서 리더십을 증명했다. 그녀는 안정감과 냉철함, 결단력을 갖고 양보와 포용력의 리더십을 발휘해 ‘정치적 거물’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대중적 인기를 누렸으며,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에 빗대 ‘독일판 철의 여성’이라 불리고 있다.
이처럼 강력한 리더십의 원동력은 숙련된 신학적 사고능력에 있으며, 이것은 부친의 철저한 신앙교육에서 나왔다. 심지어 사회 정의문제를 풀 때는 말라기 3장을 인용하고 줄기세포 연구를 통한 치유 가능성을 제시할 때는 마태복음 9장에 나오는 야이로의 딸과 혈루증 앓는 여인 이야기를 인용할 정도였다.
“신앙은 나와 타인에 대한 관용적 시각과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길러줍니다. 제가 만일 무신론자였다면 이와 같은 책임의식을 지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신앙은 언제나 제가 무겁게만 느끼는 삶의 부담감을 가볍게 만들어 줍니다.” “특히 기도는 부족한 나의 모습을 뒤돌아보고 겸손한 자세로 섬김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줍니다.”(1995년 함부르크 ‘교회의 날’ 강연 중)
그녀는 1954년 서독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지만 목회자였던 부친 홀스트 카스너를 따라 생후 6주 만에 동독 템플린으로 이사했다. 그의 부친이 안정적인 목회지를 버리고 동독으로 향한 것은 ‘동독에 목회자가 부족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사회주의 체제 안에서 목회자로 사역했던 부친 때문에 늘 비밀경찰이 따라 붙었다.
“저는 매우 눈에 띄는 존재였습니다. 동독 사회주의 체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목사의 딸이었으니까요.”(여성잡지 ‘브리기테’ 인터뷰 중)
교회는 유년시절 삶의 근거이자 교인으로서 소양을 습득하는 공간이었다. 동독의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자신의 신앙고백을 공식석상에서 표현하지 않고 내면화시키는 방법을 체득했다.
성경공부 모임과 성가대원으로 봉사했던 그녀는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기 위해 자유청년동맹 단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86년 라이프치히대학(구 카알 마르크스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메르켈은 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민주개벽’이라는 민주화 운동 단체에서 언론 홍보담당관으로 활동했다. 90년 통일 독일 총선거에서 뤼겐지역에 출마해 당선됐으며, 91년 여성청소년부 장관, 94년 환경부 장관, 98년 기독민주당 사무총장, 2000년 기독민주당 의장, 2007년 유럽연합 의장, G8 의장 등으로 승승장구했다. 태생의 한계를 극복하고 기독교 정치 구현을 외치며 권력의 핵심에 오른 것이다.
‘그리스도인 앙겔라 메르켈’(한들출판사)을 번역한 조용석 박사는 “우리로 따지면 북한 평양에서 선교하던 목사의 딸이 통일 후 남한으로 넘어와 보수 정당의 의장이 되고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스스로 기독교인이라 자부하기보다 기독교인의 삶을 살아가는 게 더 중요하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도자”라고 설명했다. 조 박사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대립을 창조적으로 결합시켜 문제를 해결하고 소통하는 능력이야 말로 한국 기독교 지성그룹이 본받아야 할 내용”이라고 평가했다.
메르켈이 주창하는 겸손과 섬김의 리더십은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사실은 우리가 경솔하게 타인을 정죄할 수 있는 도덕적 우월감을 주셨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겸손한 삶은 자아가 아니라 타자의 존재가 삶의 중심입니다. 그래서 겸손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산다면 누구든지 행복하게 인생을 살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백상현 기자, 신재범 인턴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