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정부·사회, 식민지배 눈감고 있어요”

입력 2010-11-09 21:18


‘임종국상’ 수상 日 시민운동가 야노 히데키

“요즘 일본에서는 한국 걸그룹이 인기입니다. 양국이 문화적으로 어울리니 보기 좋습니다만 뭔가 허전합니다. 식민지배에 대한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과거는 우리가 덮는다고 지워지지 않아요. 시간에 맡긴다고 식민지배의 상처가 아물지도 않습니다. 이는 양국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제4회 ‘임종국상’ 사회부문 수상자인 일본의 시민운동가 야노 히데키(矢野秀喜·60)씨는 9일 본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일제 식민지배의 청산을 위해선 한·일 양국 국민들의 적극적인 행동과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강제병합100년공동행동 일본실행위원회’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야노씨는 교토대를 졸업하고 지방공무원으로 근무하다 1990년대 한국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법적 지원에 나서면서 15년간 한·일 관계 정립에 투신해 왔다. 특히 강제동원 피해와 관련한 문제에서는 강제연행기업과의 재판을 위한 모금이나 원고변론 지원부터 일본 국내와 국제사회에 식민지배의 참상을 알리고 반성여론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이 때문에 그는 일본 우익으로부터는 ‘최고의 반일 인물’로, 일부 언론으로부터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대부’라는 극과 극의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야노씨는 일제 식민지배의 상처가 깊고 넓다는 사실을 숱하게 느껴왔다. 그는 “오키나와전에 동원된 한국인 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경북 영양의 산속 마을을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20∼30명의 한국인들이 ‘아버지 행방을 찾아 달라’거나 ‘규슈 탄광에서 일을 했는데 임금을 받지 못했다’고 호소해 왔다”며 “그런 작은 시골에까지 식민지배가 영향을 미친 걸 확인하고 새삼 놀랐던 적이 있다”고 회고했다.

야노씨는 일본 정부와 사회가 여전히 식민지배에 눈을 감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일본 정치 지도자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마당에 과거 청산이 이뤄질 수 있겠느냐”며 “진정한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임종국상은 민족문제연구소와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가 친일청산에 앞장선 임종국(1929∼89) 선생을 기리기 위해 2005년 제정한 상이다. 2007년까지 매년 시행하다 2008∼2009년 친일인명사전 편찬 사업으로 미뤄졌고, 올해 다시 수상자를 냈다. 한국 사법시스템의 형성과정과 검찰 중립에 대한 연구를 해온 문준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학술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시상식은 10일 오후 7시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개최된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