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상화 극적 합의… 여야 일단 ‘출구’ 열었지만 뇌관은 그대로 남아
입력 2010-11-09 22:28
검찰의 국회의원 사무실 무더기 압수수색 이후 일촉즉발 상황으로 치닫던 국회가 9일 여야 6당 원내대표단 합의로 일단 출구를 마련했다. 각 당 지도부도 국회의원 압수수색에 대한 긴급 현안질의 본회의 개최, 유통법과 상생법을 각각 10일과 25일 분리 처리한다는 합의 내용에 환영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표면적으로 여야 모두 이번 합의가 ‘밑지는 장사’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나라당은 유통법 우선 통과라는 기존 입장을 관철시킨 것에, 민주당은 상생법 통과에 대한 정부 확약을 받아내고 그 시기를 앞당긴 성과에 각각 방점을 두는 표정이다.
이면을 들여다보면 국가적 행사인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국회 파행에 대한 책임을 모두 떠안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여야 합의의 촉매제가 된 측면이 크다. 또 유통법 처리가 늦어질 경우 일 수 있는 비난 여론에 대한 부담감도 컸다.
민주당 역시 검찰 수사에 대한 반발로 당장 농성에 들어가게 되면 추후 예산 심의 등을 해야 하는데 출구 전략이 마땅치 않았다. 여기에다 여야 의원들이 같이 압수수색을 당한 상태이기 때문에 무조건 야당 탄압이라고 주장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측면도 있었다. 민주당 핵심 당직자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검찰의 의원 사무실 압수수색에 대해 야당 탄압이나 입법권 침해라는 의견이 정당한 수사라는 의견보다 많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전날까지 검찰의 국회 압수수색을 놓고 ‘국회 유린’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던 야당이 전격적으로 국회 정상화에 합의한 것을 두고 의구심을 갖는 시각도 있다. G20 정상회의까지 일시적인 휴전이라는 의견부터 민간인 사찰에 대한 이면 합의가 있었다는 의견 등 갖가지 억측도 난무하고 있다.
아무튼 정치권에선 이번 합의에서도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와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의 정치력이 발휘됐다는 평가다. 김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상생법을 처리해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야당의 주장에 “상생법이 무산되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는 배수진을 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원내대표 역시 긴급 현안질의 외에 ‘총리에게 상생법 통과를 확약 받는다’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박희태 국회의장 역시 노련함을 과시했다. 이틀간 여야 원내대표 대화 채널을 계속 가동시킨 그는 이날 회동에서는 “노마지지(老馬之智·경험을 쌓은 사람이 갖춘 지혜)를 발휘해 달라”고 주문했다. 또 합의 분위기가 조성되자 “박지원 원내대표가 정치를 좌지우지한다고 했는데 그 진면목을 봤다”며 분위기를 띄우기도 했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