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코리아 이니셔티브

입력 2010-11-09 17:39

1960년대 후반 몇몇 남미 출신 학자들은 남미 저발전의 원인을 선진국에 대한 종속에서 찾았다. 그들은 선진국을 ‘중심’, 남미를 ‘주변’으로 나누고 중심-주변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저발전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봤다. 이른바 종속이론의 탄생이다.



하지만 70년대 들어 본격적인 압축성장을 구가하던 한국과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의 존재는 종속이론을 무색케 했다. 일찍부터 자생적 자본주의 발전을 이룬 일본은 예외라지만 주변부에 불과한 동아시아의 고성장은 설명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마침 그때 한국 경제가 꼬꾸라졌다. 71∼79년 연평균 실질성장률이 10.3%이던 경제가 80년엔 -1.9%로 폭락한 것이다. 기세 좋게 달려가던 한국도 결국 중심-주변의 올가미를 피해갈 수 없었던 것이라고 종속이론가들은 평가했다.

더구나 80년 5월 광주민주화항쟁 이후 반미 감정이 확대되면서 종속이론은 한국의 이념지형을 선도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유세(有勢)는 오래가지 못했다. 한국 경제가 예전의 성장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81∼90년 연평균 실질성장률은 9.8%로 다시 10%대를 육박했다.

이후 한국에서 종속이론은 정치·사회·문화 이슈로서만 제기될 뿐이고, 한국의 압축성장은 저개발·개도국들의 전설이 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04년부터 개발도상국들에 한국의 성장경험을 소개·지원하는 ‘경제발전경험 공유사업(KSP)’을 펼치게 된 배경이다.

내일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는 글로벌 금융안전망 구축방안과 더불어 개발의제 등을 다룬다. 특히 서울 G20의 주제 ‘위기를 넘어 다 함께 성장’은 한국의 지난 시절 성장 경험을 빼놓고 거론하기 어렵다.

그동안 선진국들은 저개발·개도국에 대한 개발원조방식으로 자금만 지원했을 뿐 성장경험을 전수하거나 성장에 꼭 필요한 자체역량 강화사업에는 소홀했다. 저개발·개도국들도 자금보다 성장의 전제조건을 확보하고 싶어 한다. 한국이 주도권(이니셔티브)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대목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세계 경제의 중심은 주요 선진 7개국(G7)에서 G20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한국의 활동영역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중심-주변의 종속 틀을 뚫고나온 한국의 경험이야말로 코리아 이니셔티브의 원천이다. 사족-종속이론의 한계는 편협하고 고정적인 글로벌 시각에 있었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