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황주리] 잊을 수 없는 이야기
입력 2010-11-09 17:35
올해 봄 뉴질랜드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사를 통해 그룹투어를 떠난 우리 일행은 버스를 타고 뉴질랜드의 푸른 초원을 바라보며 한없이 달렸다. 이민 온 지 7년이 됐다는 가이드는 버스 속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뉴질랜드에서 가장 존경받는 직업은 목수라 한다. “한국이 낳은 유명한 목수, 조 목수를 아십니까?” 가이드가 말하는 조 목수는 그 유명한 ‘마거릿 조’의 아버지였다. 자세히 알지는 못해도 조 목수의 일가족 살해 사건은 당대에 회자되는 떠들썩한 사건이었다.
월남전에 참전한 조 목수는 베트남 여인과 사랑에 빠져 딸을 하나 낳았다. 그녀가 바로 마거릿 조다. 딸을 낳고 세상을 뜬 베트남 여인을 잊지 못한 그는 월남전이 베트콩의 승리로 끝나자 한국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딸을 데리고 갈 수 없다는 걸 알고 호주 난민이 돼 호주로 떠났다. 호주에 도착한 조 목수 부녀는 한국인 이민자들의 수군대는 소리를 이겨내지 못하고 뉴질랜드로 떠나 그곳에 정착한다. 워낙 손재주가 뛰어난 조 목수는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한 건설회사 사장에게 인정을 받아 그곳 책임자로 일하게 되고 살 만한 부를 누리게 된다.
그러자 한국에 두고 온 아내와 딸 생각이 간절해진 조 목수는 수소문 끝에 아내가 보험 일을 하면서 재혼도 안 하고 딸자식 하나 키우며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한없이 미안한 마음으로 그들을 뉴질랜드로 데려온다. 하지만 머지않아 조 목수는 아내가 의붓딸인 마거릿 조를 엄청나게 구박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복잡한 심경을 사격 연습과 술로 달래던 그는 어느 날 아내가 마거릿 조를 심하게 구박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분노가 폭발해 지니고 있던 총을 술김에 휘두르다 아내와 딸을 살해하고 자신도 머리에 총을 겨눠 자살하고 만다.
아버지를 말리던 마거릿 조 역시 척추에 총을 맞아 영원히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 된다. 마거릿 조는 다시는 일어날 수 없는 장애인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뉴질랜드 매스컴의 급작스런 인터뷰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나는 한국인입니다. 한국인인 나의 아버지는 보잘것없는 베트남 난민인 나를 살리기 위해 이 낯선 나라 뉴질랜드로 오셨습니다. 아버지가 저지른 모든 일은 저를 위해 생긴 일입니다. 이 모자란 저를 거두어주신 아버지와 뉴질랜드 정부에 감사합니다.”
그 인터뷰를 본 뉴질랜드 사람들은 다 눈시울을 적셨다고 한다. 의사가 돼 세상의 아픈 사람들을 구원하고 싶다는 마거릿 조의 꿈은 장애인이 되는 바람에 무산됐지만, 그녀는 훗날 뛰어난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돼 뉴질랜드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큰 재산가가 됐다. 지금도 그녀는 한국인 사회를 위해 꾸준히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당신은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 세상에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존재도 사람이고, 가장 끔찍하고 무서운 존재도 사람이다. 문득, 참 아름다운 사람 ‘마거릿 조’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황주리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