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이상훈] 변화를 위한 일본 지방행정의 진통

입력 2010-11-09 17:36


최근 일본에서는 지방행정의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나고야(名古屋)시와 가고시마현 아쿠네(阿久根)시에서 시장과 의회의 대립이 유권자를 끌어들인 리콜(주민소환) 절차로 발전하는 등 지방행정에 이변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아쿠네시의 다케하라 신이치 시장이 지방의회나 공무원제도 개혁을 주도하면서 전결처분을 반복함으로써 의회와의 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결처분이란 의회 의결이 필요한 문제를 지방자치단체 수장(首長)이 의회 동의를 거치지 않고 자신이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8월 열린 시의회에서 다케하라 시장이 행한 전결처분 19건 중 14건이 승인되지 않았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시장 반대파와 시장 찬성파에 의한 리콜운동이 각각 진행됐거나 진행되고 있다.

개혁과 이익 네트워크 충돌

나고야시에서는 가와무라 다카시 시장이 선거공약 이행을 위해 제출한 시민세 감세 등의 조례안이 의회에서 계속 부결되자, 시의회 해산을 요구하며 리콜운동을 전개했다. 당초 시장이 의회 리콜운동을 리드하는 것을 의문시하는 소리도 있었고, 무모한 시도라고 조소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시의회 리콜 성립에는 엄청난 수의 서명이 있어야 되며, 게다가 주소나 이름만이 아니라 생년월일이나 날인까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고야시의 경우 시의회 리콜의 가부를 묻는 주민투표 실시에 필요한 서명 숫자는 36만5000명 정도다. 그러나 서명 숫자는 46만5000명에 이르렀다.

왜 이렇게 많은 서명이 모였는가? 의회 리콜의 서명운동은 시민운동에 참여한 적도 없는 일반 나고야 시민이 담당했다. 지금까지의 시정(市政)이나 의회 그리고 지방정치 전반에 대한 불신과 불만 등이 결집된 결과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시장의 전결처분이나 시장 주도의 리콜운동에 대한 법적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배경에는 지방행정에 무엇이 필요하며, 그것은 주민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는 의식이 존재하고 있음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일본에서 지방행정 혼란이 발생한 이유는 일본 지자체가 채택하고 있는 이원대표제라는 시스템이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원대표제는 지자체 수장과 의원이라고 하는 2종류의 대표자가 각각 주민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상호견제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나고야시는 오랫동안 시 출신의 시장이 당선돼 왔으며, 의회도 공산당을 제외하면 모든 정당이 여당인 체제였다. 모든 것이 자신들만의 세계 속에서 결정되는 시대가 지속돼 시정은 주민과 괴리돼 갔다. 시장 선거와 시의원 선거는 무풍이 일상화돼 투표율은 침체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의회와 수장, 직원조합이 하나가 돼 조례안이나 예산안을 100% 통과시켜 왔다. 공무원 급여 삭감 등에 있어서도 의회와 노동조합이 연계해 저항해 왔다.

주민들 자결권에 눈 떠

이러한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개혁파 시장이 등장하게 됐다. 그러나 의회와 직원조합, 이익단체 등으로 구성되는 기존의 이익 네트워크는 개혁파 시장에 강하게 반발했고, 그 결과 시장과 의회에 의한 이원대표제나 의회제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지금까지의 구태의연한 감각으로 정치를 하려는 사람과 그것을 바꾸려 하는 사람이 충돌해 주민 불만이 분출하고 있는 것이 나고야시나 아쿠네시의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어느 나라에서든 개혁이란 쉽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개혁은 기존의 강고한 이익정치시스템 하에서 이익을 향유해 온 세력의 강한 저항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강한 저항을 극복할 수 있을 때만 조직 변화는 가능하다. 일본 지방행정이 직면한 진통의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다만, 주민 사이에 지방행정에 대한 변화 의식이 고조되기 시작했으며, 그러한 변화를 위한 출발점에 선 것만은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상훈 한국외대 교수일본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