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음산한 ‘핏빛 공포’ 대신 드라마 부각된 작품들 인기 지속
입력 2010-11-09 21:24
여름 내내 극장가를 지배했던 스릴러 영화들이 늦가을이 되고도 물러갈 기세가 없다. 여름 개봉작들에 비해 훨씬 덜 잔인하면서도 감각적인 연출로 세련된 공포를 선사하는 작품이 많아, 호러 팬들에게는 여전히 행복한 계절이다. 사지 찢겨져나가고 피 튀기는 공포 영화를 싫어했던 관객도 한번쯤 도전해볼 만한 영화들이다.
우선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데블’(사진)이 눈에 띈다. 우연히 엘리베이터 안에 갇히게 된 다섯 남녀가 밀폐된 공간에서 극단적인 공포를 경험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수상한 다섯 명의 신원을 찾아내는 형사, 어렸을 적 들은 미신을 중얼거리는 경비원이 긴박감을 더한다. 잔혹한 살인의 순간은 암흑으로 처리하고, 찢어지는 비명도 자제했다. 극도의 공포감은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만으로도 생생히 드러난다. ‘식스 센스’에서 보여줬던 반전까지는 아니라도 충분히 기대를 만족시킬 영화다.
유지태·수애가 주연한 한국 영화 ‘심야의 FM’도 1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순항 중이다.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던 아나운서가 납치범으로부터 가족을 인질로 데리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이를 구하기 위한 여성 아나운서와 그 아나운서를 극단적으로 짝사랑하는 납치범이 절박하게 쫓고 쫓긴다. 시종일관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서 드라마적 요소를 충분히 살린 것이 흥행의 원동력이 됐다.
세계 최고의 기업에 입사하기 위한 시험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그린 ‘이그잼’(주연 나탈리 콕스, 루크 마블리)도 곧 개봉된다. 서로 다른 성별과 인종, 외모를 가진 8명의 응시자들이 제한된 공간에 갇혀 합격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응시자들은 서로를 속고 속이는 단계를 넘어 정답의 힌트를 얻기 위해 다른 응시자를 고문하거나 총으로 위협하는 단계까지 치닫는다. 설정은 다소 작위적이지만 적나라한 인간의 이기심에 섬뜩해지는 영화다.
2008년 50여개 영화제에서 상을 휩쓴 스웨덴 영화 ‘렛 더 라이트 원 인’의 할리우드 리메이크작 ‘렛미인’도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악마를 보았다’, ‘아저씨’ 등 여름의 화제작들과 달리 ‘핏빛’을 자제하고 드라마를 부각시킨 것이 가을 스릴러들의 특징이다.
양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