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 싱크탱크가 필요하다
입력 2010-11-09 16:01
[미션라이프] 한국 교회는 과연 기독교 가치관을 수호할 수 있는 싱크탱크를 보유하고 있는가? 싱크탱크란 특정 사항에 대한 조사, 분석 및 학제간 연구 등을 통해 각종 정책 계발뿐 아니라 정책 실행 피드백, 지속적인 개선 유도까지 수행할 수 있는 고급 두뇌집단을 일컫는다. 현재 교계는 한반도평화연구원,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등 양질의 그룹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를 견인하는 동력까지 되고 있는지에는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고위공직자 출신인 한 장로는 “지도자들이 교회를 위해 쏟는 에너지의 100분의 1만이라도 나라와 민족, 기독교 공동체를 위한 아젠다를 설정할 수 있는 싱크탱크를 만드는 데 투자한다면 안티 기독교 득세, 타 종교와의 갈등 등을 적잖이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앞으로는 국가에 정책을 건의하고 법안과 입법 과정을 면밀히 검토하며 외국의 입법사례까지 사전 조사할 조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각종 미디어에 기독교를 의도적으로 폄훼하는 기사 내용이 있는지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싱크탱크 왜 필요한가=한국교회는 개인윤리적 차원의 논의에서 벗어나 사회구조와 사회정책, 사회변혁의 문제를 선도해나가는 사회윤리적 실력까지 갖춰야 할 시점에 놓여 있다. 안티 기독교 운동, 봉은사 땅밟기 동영상 파문, 동성애차별금지법 논란, 교회를 교묘하게 파고드는 이단의 발흥 등 풀어야 할 과제들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독교 내 지성공동체를 움직일 수 있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서구 기독교의 경험을 배워 한국은 물론 세계적인 담론까지 형성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싱크탱크를 만드는 데 뜻있는 교계 지도자들이 앞장서야 한다.
김영래 감신대 교수는 “다원화, 글로벌화 된 사회에서 교회는 고유의 복음전파 외에도 성경적 가치를 변증하고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내야 할 사회적 책임을 떠안고 있다”면서 싱크탱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목협) 이상화 사무총장도 “정치행위로서의 교회 연합은 있었지만 구체성을 띤 아젠다 설정에는 후진성을 보여왔다”며 “교단과 교파, 개교회 주의를 뛰어넘는 객관적인 데이터 산출과 의미 분석, 정책 계발과 추진 등을 위한 기독교내 고급자원 네트워킹과 더불어 미래의 전문가 양성이 시급하다”고 했다. 월간목회 발행인 박종구 목사도 “한국 교회 안에 변화를 이끌 창조적 리더십이 절실한 때”라며 “그러기 위해선 탁월한 싱크탱크의 도움을 받는 게 필요충분조건”이라고 밝혔다. 리더십 발휘 영역이 크면 클수록 지도자는 혼자가 아닌 지혜자들과 더불어 함께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싱크탱크 어떻게 만들 것인가=벤치마킹 대상으로 종교 자유와 생명의 존엄성, 전통적인 가정 수호 등에 힘쓰는 미국 기독법조인단체 ADF(Alliance Defense Fund) 등을 들 수 있다. ADF는 1994년 복음전파의 자유에 대한 외부 도전에 대항키 위해 대학생선교회 설립자인 고 빌 브라이트 목사와 ‘크라운 재정 미니스트리즈’ 래리 버켓 대표 등에 의해 설립됐다. 2500만 달러 이상의 기금을 조성해 종교 자유와 관련한 소송과 법률 제정, 법조인 제자훈련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40여명의 변호사가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시에 있는 ADF 본부에 소속돼 종교 자유와 관련된 소송을 전담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조지 바나가 설립한 바나 리서치그룹은 교회와 비영리 기독교기관들에 대한 연구 조사를 담당하고 있다. 미국 교회 및 사회에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공, 사회의 변혁을 이끄는 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교회 밖에서 기독교를 이해할 수 있는 통로가 되고 있다. 미 언론들이 연구결과를 인용할 정도로 공신력이 있다.
영국에는 CCFON(Christian Concern For Our Nation)이 있다. 2004년 안드레 미니치에로 월리엄스 변호사가 설립한 이 단체는 영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정책 및 법률이 국회에서 제정되지 못하도록 막는다. 법률 분석, 공공정책 자문, 공공정책 상담, 교회 및 이슬람 관련 자문, 종교의 자유에 관한 자문 등을 위해 전문가 그룹을 갖추고 있다. 3만5000여명의 후원자들이 이 단체를 돕고 있다. 활동영역 또한 낙태, 입양, 인간배아 및 수정, 안락사, 가족(혼인 및 동성결혼 등), 수양자녀의 양육, 인신매매 및 매춘, 혼전순결 및 임신예방, 종교의 자유, 이슬람화 저지운동 등 광범위하다. 영국 내 2000여명의 법조인이 참여하고 있는 158년 전통의 LCF(Lawyers Christian Fellowship)가 CCFON의 협력기관이다.
◇그래도 가능성이 있다=1970년대부터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한국교회의 갱신에 대한 문제들을 연구, 발표해온 진보 진영의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지난 3월 출범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기획단 등의 싱크탱크가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기독교적 담론 생산에 머물러 있다. 교회와 직간접적인 법률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변호사 또한 부족하다. 기독법률가회(CLF), 애드보켓코리아(AK), 법무법인 로고스 및 소명 소속 기독법조인들이 사안별로 의뢰된 사건을 처리할 뿐이다. 한목협이나 한국교회미래를준비하는모임이 외부 여론조사기관에 의뢰, 의미 있는 통계자료를 제공해왔지만 그 또한 간헐적이었다. 총체적으로 볼 때 한국 기독교는 교회 영역을 뛰어넘어 대정부, 대사회를 향한 소통자가 되기엔 힘이 부친다.
그런 점에서 ‘성경을 통한 재정향 2008년 6월 서울선언’을 이끈 신학자 140인(공동대표 박종천 조병호)이 한국형이면서도 글로벌한 싱크탱크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지난 2008년 6월 2일, 교단과 교파, 신학적 입장을 초월해 모인 이들은 신학과 신앙, 그리고 실천력을 성경적으로 걸러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었다(사진). 이들은 최근 신앙, 삶, 교회 생활과 예전을 담은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을 위한 지침서’ 발간에 뛰어들었다. 내년 말이나 늦어도 2012년 초 600쪽 이상 분량으로 영어와 중국어판으로도 나올 지침서에는 인권, 낙태, 동성애, 자살, 이혼, 통일, 병역, 통일, 환경 등 실제생활과 관련된 내용이 망라될 예정이어서 새로운 싱크탱크 모델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