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서 ‘흑신’으로 유명세 스토리작가 임달영, “능력있는 만화가보다 기획자가 필요”
입력 2010-11-09 17:34
만화 ‘흑신’의 스토리를 쓴 임달영(33) 작가는 자신을 ‘만화가’나 ‘만화작가’가 아닌 ‘기획자’로 불러달라고 했다. 실제 8일 서울 구로3동 그의 사무실 ㈜아트림미디어에서 만난 임 작가의 명함에는 ‘기획관리실장/이사’라는 직함이 박혀 있었다. 그는 지금 우리 만화계에는 능력 있는 만화가가 아니라 기획자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임 작가는 우선 한국만화가 위기를 겪고 있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천만에요. 한국만화가 위기라니요. 당장 저 같은 사람도 굶지 않고 잘 살고 있잖아요. 우리 만화계는 코믹스 시장 부분만 불황을 겪고 있을 뿐입니다. 잡지에 만화를 연재하다 단행본으로 펴내는 일본식 만화 출판 시스템이 흔들거리는 거죠. 만화와 관련된 문화 콘텐츠에 대한 수요는 점점 더 늘고 있습니다.”
그는 다만 한국만화가 시장 변화에 적절히 적응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도서대여점이 생기면서 만화출판 시장이 10분의 1로 줄었고, 이후 인터넷 스캔 만화가 판치면서 또다시 수익성이 곤두박질쳤는데도 별다른 대응책 없이 우왕좌왕했다는 것이다.
임 작가는 1995년 고교 3학년때 ‘레기오스’라는 판타지 소설로 데뷔했다. 2000년 지금의 회사를 만들고 일본에서 패키지 게임을 개발했다가 만화 스토리작가로 데뷔한 뒤 유명세를 탔다. 특히 ‘흑신’(그림 박성우)은 2004년 일본의 격주간 청년 만화잡지인 ‘영 간간’에 연재된 이후 단행본만 150만부 이상 팔려 나갔다. 한국보다 10배 이상 높은 판매고였다. 흑신은 일본 TV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는데, 만화의 ‘메이저리그’인 일본에서 한국 만화를 원작으로 한 TV애니메이션이 제작된 것은 처음이다. 그는 일본에서 주로 활동하며 ‘언밸런스×2’(그림 이수현)와 ‘프리징’(그림 김광현) 등 화제작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임 작가는 일본만화 시스템과 비교할 때 우리 만화계의 기획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일본만화 산업의 경우 흥행과 성공을 위한 시스템이 잘 구성돼 있다. 코믹스 잡지는 작가들을 관리하고 새로운 작품을 발굴하는 역할을 맡는다. 작품이 나오면 방송사와 투자사, 배급사, 애니메이션 제작사 등으로 이뤄진 ‘제작위원회’가 비즈니스에서 성공 가능성을 제고해 상품화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콘텐츠 파급효과가 다르다보니 한국과 일본간 만화가에 대한 처우가 하늘과 땅 차이다. 임 작가는 “일본 잡지사에서 페이지당 40만원 정도의 고료를 받고 있으며 1년 수입이 2억∼3억원은 된다”고 했다.
“우리 만화가들의 서사나 작화 능력은 일본에 비해 절대 뒤쳐지지 않아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만화 콘텐츠를 다루는 노하우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원석이 있는데 이를 다듬어 상품으로 만드는 데는 익숙하지 못한 거죠.”
임 작가는 스스로 만화 콘텐츠 기획자로 나섰다. 누군가 나서야 한다면 자신이 적격이라고 믿었다.
“이제 만화를 팔아야 합니다. 지금은 누군가 읽긴 하지만 돈이 되지 않는 방식을 고집하는 상황이에요. 잡지나 단행본이 안 팔린다면 다른 뭔가 팔리는 형태로 만화를 만들어야죠. 저도 내년쯤 스마트 시대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만화를 내놓을 생각이에요. 한국만화가 한류를 이끌 시대가 올 거라고 믿습니다.”
글·사진=김상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