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그 묵묵한 생명력에 바치는 꽃 한 송이… 이지은 ‘꽃을 그리다…’ 展
입력 2010-11-09 21:21
“꽃을 주세요 우리의 고뇌를 위해서/꽃을 주세요 뜻밖의 일을 위해서/꽃을 주세요 아까와는 다른 시간을 위해서//노란 꽃을 주세요 금이 간 꽃을/노란 꽃을 주세요 하얘져가는 꽃을/노란 꽃을 주세요 넓어져가는 소란을//노란 꽃을 받으세요 원수를 지우기 위해서/노란 꽃을 받으세요 우리가 아닌 것을 위해서/노란 꽃을 받으세요 거룩한 우연을 위해서….”
10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삼청동 갤러리 아트파크에서 개인전을 여는 작가 이지은(51)의 그림은 김수영 시인의 ‘꽃잎 2’를 떠올리게 한다. 전시 제목도 시의 한 구절을 빌려와 ‘꽃을 그리다 아까와는 다른 시간을 위하여’라고 지었다. 꽃을 그리되 여백을 강조하던 이전의 작업과는 다르게 싱그럽고 화사한 색감으로 자연에 대한 시각의 변화를 시도했다는 얘기다.
꽃과 잎, 나뭇가지 등을 대상으로 작업한 신작 20여점은 꽃이나 잎의 형태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순도 높은 컬러로 생기발랄한 분위기를 선사하고 있다. ‘꽃’ 연작은 꽃잎의 줄기까지 세밀하게 그린 다음 점묘 방식으로 또 다른 꽃잎을 배열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이미지를 전한다. 작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자연에 대한 감사”라고 설명한다.
‘잎’ 연작의 경우 끈질긴 생명력을 표현하기 위해 다른 부분을 과감히 생략한 채 이파리만을 확대시켜 실핏줄 같이 엉긴 미세한 잎맥을 보여주고 있다. 사계절의 변화를 울긋불긋 나뭇잎으로 묘사한 그의 작품들은 화면에 물감을 반복적으로 흘리거나 아크릴로 수십 번 칠하는 등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숱한 붓질을 거친 그림들은 관람객들에게 세월의 흐름과 가을의 정취를 동시에 안겨준다.
그의 그림 앞에 서면 마음이 환해지는 기분이다. 서성록 미술평론가는 “색의 물결이 고요히 흐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초롱초롱한 색감은 보는 이에게 사랑의 눈빛을 보내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랑에 눈먼 사람처럼 화면을 대면하는 즉시 작품에 사로잡히고 만다. 얼룩진 생각들은 훌쩍 자취를 감추고 희망과 소망의 무지개가 저만치에서 떠오르는 것 같다”고 평했다(02-733-8500).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