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인권委… 비상구도 막혔다

입력 2010-11-08 21:26


국가인권위원회가 출범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현병철 위원장의 운영 방식에 항의하며 지난 1일 유남영 문경란 상임위원(차관급)이 동반 사퇴한 데 이어 8일 열린 전원위원회는 참석 위원 두 명이 현 위원장을 상대로 ‘사퇴 파문’의 책임소재를 추궁하다 퇴장해 파행을 빚었다. 인권위 안팎에서는 현 위원장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인권위는 8일 오후 2시 서울 을지로 인권위 회의실에서 제17차 전원위원회를 열었으나 일부 참석 위원들은 현 위원장을 상대로 거취 표명을 요구하다 회의 중 퇴장했다.

현 위원장은 회의 시작에 앞서 모두발언을 통해 “(인권위를) 이끌어가는 입장에서 옳고 그름을 떠나 파장을 일으킨 데 대해 죄송하다”며 “인권위 업무를 수행하면서 어떤 사람이나 기관에 부탁을 하지도, 받지도 않았다. 모든 판단을 할 때 국민 전체를 위한 것인지 자문했으며 추호의 소홀함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퇴 여부는 언급하지 않았다.

장향숙 상임위원은 현 위원장 발언이 끝나자 발언권을 요청해 “위원장은 안팎의 사퇴 요구를 모른 척하고 있다”며 “(위원장에게서) 어떤 책임 있는 말도 찾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장주영 비상임위원 역시 “두 상임위원이 사퇴한 것은 위원장의 독단적 운영에 대한 불만이 누적됐기 때문”이라며 “위원장은 인권위의 독립성을 수호하고 이를 어긴 적이 없다고 했지만 권력에 맞서는 것을 피해 왔다”고 성토했다.

이후 두 위원이 회의장 밖으로 나가버리자 회의실 안팎은 고성이 오가며 혼란에 빠졌다. 회의실 방청석에 있던 시민단체 회원들은 현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했고, 회의실 밖에서는 어버이연합회 회원 50여명이 군대 내 동성애를 인정한 인권위 결정에 항의하며 인권위 직원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현 위원장은 어수선한 분위기가 계속되자 정회를 선언했다가 10분 후 나머지 비상임위원 5명만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속개했다. 인권위는 회의에서 야간 옥외집회를 제한하는 집시법 개정안 처리에 대한 의견 표명은 다음 전원위 때 재상정키로 했다.

한편 최영애 유시춘 전 상임위원 등 전직 인권위원 8명은 서울 정동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현 위원장은 최근 인권위 파행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책임 있는 처신을 하라”고 요구했다. 최 전 상임위원은 “‘책임 있는 처신’에는 많은 것이 함축돼 있으며, 현 위원장의 사퇴까지 포함돼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기자회견문에는 김창국 최영도 전 인권위원장도 서명했다.

박지훈 임세정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