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베를린 장벽’ 곳곳서 생길 조짐
입력 2010-11-08 21:18
1989년 11월 9일, 냉전 시대의 종식을 예고하며 동독과 서독을 가르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그리고 21년이 흘렀다. 독일 통일 이후 국토가 양단된 분단국가는 대한민국 정도만이 남게 됐다.
그러나 전 세계 분쟁 지역에선 ‘제2의 베를린 장벽’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미 철벽이 세워진 곳이 있다. 이스라엘은 2002년부터 요르단강 서안을 분리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일대에 장벽 건설에 나섰다. 이를 두고 영국 일간 가디언 등 외신은 ‘제2의 베를린 장벽’이라며 비난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를 보도해 왔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테러에서 자국민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공사를 지속하고 있지만 국제단체는 팔레스타인인의 삶이 고립되고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미국은 멕시코인의 불법 이주를 막기 위해 멕시코와의 국경에 길이 1100㎞의 장벽을 쌓았다. 금속의 담벽에는 감시카메라와 행동감지기 등이 곳곳에 설치돼 있다.
정치·경제적 이해에 따라 제2의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는 상황을 피한 경우도 있다.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는 한때 ‘글란 콜롬비아’라는 같은 국가에 속했다. 그러나 29년 베네수엘라가 분리·독립한 이후 콜롬비아와 화해와 갈등을 반복했다. 2008년 3월엔 콜롬비아가 에콰도르 국경 너머까지 쫓아가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을 공격하고, 에콰도르와 동맹관계인 베네수엘라가 콜롬비아 국경에 군대를 파병해 전쟁 직전까지 갔다. 올 7월에도 위기가 있었다. 콜롬비아 정부는 베네수엘라가 FARC에 은신처를 제공했다고 주장했고 이에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외교단절로 맞섰으나 20여일 만에 국교를 회복했다. 이들이 신속히 관계 회복에 나선 건 경제적 피해를 보지 않겠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양국은 미국을 제외한 최대 교역 파트너다.
러시아와 독일 프랑스의 관계도 같은 맥락이다. 2008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두고 “유럽의 새로운 베를린 장벽”이라면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옛날(냉전시대)만큼 위험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당시 나토는 구소련에 속해 있다가 소련의 몰락으로 독립한 국가들을 영입하면서 러시아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지난달 18일 러시아가 독일, 프랑스와 ‘범유럽안보동반자관계’ 구축에 나서면서 달라졌다. 러·프·독 3국 정상이 만난 건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처음이라고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전했다. 이번 만남은 오는 19일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 앞서 만난 것이다. 러시아는 유럽안보 및 대외정책에 자국의 역할을 공고히 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