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흥우] 고소영이 뭘 잘못했기에

입력 2010-11-08 17:42


열린 공간 인터넷에서는 당연한 일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시빗거리가 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저런 것이 왜 문제가 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굴까 하고 머리를 갸웃거리게 하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열이면 열 ‘다름’과 ‘틀림’을 혼동해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여기는 일부 누리꾼들의 잘못된 정의감에 그 원인이 있다.

얼마 전 영화배우 고소영씨가 구설에 휘말렸다. 아들 출산 후 서울 강남의 고급 산후조리원을 2주 가량 이용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누리꾼의 표적이 됐다. 고씨가 요금이 일반 산후조리원의 4배나 되는 1200만원을 지불하고 고급시설에 묵은 게 눈밖에 났다. 몇몇 누리꾼들은 “사회에 위화감을 조성한다”며 마녀사냥에 나섰고, 고씨 소속사는 마치 큰 죄라도 지은 양 “고씨가 VVIP실에 있지는 않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장동건 고소영 부부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연예인 커플이다. 수입도 상당할 것으로 짐작된다. 서민들 입장에서야 지나친 호사일 수 있겠으나 상위 1%에 속하는 이들에겐 1000여만원은 없어도 아쉬울 게 없는 그야말로 새 발의 피다. 더욱이 부당하게 번 돈도 아니고, 불법적인 곳에 쓰는 것도 아닌데 어디에 얼마를 쓰든 그건 그들 마음이다.

100원짜리를 놔두고 왜 1000원짜리를 사느냐고 문제 삼는 건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부정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소득에 걸맞은 지출을 해야 경제도 잘 굴러간다. 1년에 1000만원을 버는 사람이나 연봉 1억원을 받는 사람의 소비 규모가 같아야 한다면 명품산업은 존재할 수 없다. 고소득자들이 지갑을 열수록 파이는 커지고, 일자리도 늘어나는 법이다.

이명박 대통령 아들 시형씨는 지난 9월 큰아버지가 경영하는 회사에 취직했다. 그는 경력사원 공개채용 절차를 거쳐 과장으로 입사했다. 회사 근무경력이 일천한 그가 통상적으로 대졸신입사원이 10년 이상 근무해야 오를 수 있는 과장으로 채용된 것을 두고 특혜시비가 일었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외교부 특채 비리와 오버랩되면서 논란은 확산됐다. 정치권도 가세했다. 이러고도 이 대통령이 공정사회를 들먹거릴 자격이 있느냐는 게 비난의 핵심이었다.

큰아버지 회사가 아니었다면 시형씨가 그 회사에 취직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특혜라면 특혜다. 그렇지만 불법은 아니다. 유 전 장관 딸도 외교부가 아닌 민간기업에 취직했더라면 유 전 장관은 지금 장관직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수행하는 업무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고, 급여 또한 국민 세금으로 지급된다는 점에서 공무원은 공평하고, 투명한 절차를 밟아 선발해야 한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민간 부문은 다르다. 어떤 사람을 공채로 뽑든, 특채로 선발하든 그건 기업의 재량이다. 더욱이 핏줄을 중시하는 유교의식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큰아버지가 놀고 있는 조카 한 명 챙기는 것이 크게 흠될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시형씨 입사과정이 바람직했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수십 통 이력서를 들고 다녀야 하는 ‘이태백’ 입장에선 부럽기도 하고 부아가 들 만도 하다. 단지 ‘오너’의 자녀, 친척이라는 이유로 20∼30대 젊은 나이에 임원이나 사장으로 취직하는 경우가 수두룩한데 누구는 이 고생이냐며 조상 탓을 하는 이도 적지 않을 듯싶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자유시장 경제체제 하에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엄연한 현실인 것을. 자율을 최대한 보장해야 하는 민간 영역과 엄격한 규율과 제재를 수반하는 공적 영역을 동일한 잣대로 재단하려는 것은 잘못이다.

모든 사람이 똑같을 수는 없다. 개인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은 공산주의는 망했다. 나와 다른 것을 불의로 규정하고, 적대시하는 마녀사냥은 사회 불만세력이 가장 흔하게 이용하는 선동정치의 전형(典型)이다. 지금 정보의 바다 인터넷에 마녀사냥이 횡행하고 있다.

이흥우 인터넷뉴스부 선임기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