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성기철] 경기지사와 大權
입력 2010-11-08 17:45
우리나라에선 국무총리가 되면 단번에 대선 예비후보군에 진입하는 경향이 있다. 총리가 국민들에게 굉장히 무게 있는 자리로 인식되기 때문일 것이다. 김종필 이회창 이홍구 이수성 이한동 고건 정운찬…. 김태호 전 경남지사도 인사청문회를 통과했다면 분명 예비후보 반열에 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수립 후 국민 직선으로 대권을 거머쥔 총리 출신자는 아직 없다. 총리를 지낸 최규하 전 대통령은 격동기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의 간선으로 잠시 집권했을 뿐이다. 임명직의 한계 아닌가 싶다.
총리보다는 민선 서울시장이 더 각광받는다. 조순 고건 이명박 오세훈 시장은 당선과 동시에 예비후보로 분류됐으며, 이 시장은 청와대 입성에 성공했다. 윤보선 전 대통령도 서울시장 출신이지만 임명직이었다. 서울시장은 수도 행정의 책임자란 상징성 때문에 이름을 알리는 데 매우 유리하다. 그렇게 보면 오세훈 현 시장도 2012년 대선에서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손학규·김문수 대선주자 부상
최근 들어서는 경기지사가 무시할 수 없는 대선 후보감으로 부상하고 있다. 첫 민선 지사인 이인제씨가 1997년 대선에 도전했다 3위에 그친 이후 경기지사는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세 번째 민선 지사인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뜨고 있고, 현 김문수 지사도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대항마로 부각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도 상승세를 타고 있는 두 사람은 차기 대선에서 어떤 식으로든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장관과 국회의원을 지낸 모 인사는 얼마 전 이런 말을 했다. “경기도는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대도시, 중소도시, 농어촌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고 북한과도 접해 있습니다. 경기도에서 성공한 정책은 십중팔구 정부 정책으로 채택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경기지사를 대과 없이 거친 사람은 대통령직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인즉 그럴듯하다. 사실 경기도는 27개 시와 4개 군을 가진 웅도(雄道)다. 인구가 1150만명으로 서울보다 100만명 정도 더 많다. 연 예산이 12조4000억원이나 되고 공무원 수가 4만명이 넘는다. 국민들이 손 대표와 김 지사에게 눈길을 주는 것은 이런 곳에서 다년간 행정경험을 쌓았다면 대통령을 꿈꿀 자격이 있다고 봤기 때문일 게다. 그러나 아직 두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지는 않고 있는 것 같다. 뭔가 신뢰하기 어렵고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가 아닐까.
손 대표를 보자. 그는 지난달 초 당 대표가 된 후 정부를 비판하는 데 치중하다 보니 무게가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뚜렷한 근거 없이 4대강 사업을 위장된 대운하 사업이라고 몰아붙이는 게 대표적인 예다. 배추 값 폭등이 4대강 사업 때문이라는 주장은 무책임하게 들렸다. 대북정책에 있어 정부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북한 주장에 동조하는 것 또한 지지도 상승에 발목을 잡는 요인이라고 본다.
국가비전 제시하는 변신 필요
김 지사는 어떤가. 그는 오랫동안 노동운동을 한 민중당 출신으로, 요즘 ‘보수 옷 입기’에 진력하는 모습이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치켜세우는 데 열 올리고 있지만 왠지 어색해 보인다. 그보다는 진보색을 지닌 채 한나라당 개혁을 부르짖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당내에서 보수 몸통인 박근혜 전 대표를 꺾기 위해선 특히 그렇다. 경기지사로서 뚜렷한 업적이 드러나지 않은 것도 약점이다. 핵심 공약인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사업은 아직 계획 단계에 머물러 있다.
두 사람이 별다른 국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지금과 같은 행보를 계속할 경우 여론조사 지지도에서 30%를 오르내리는 박 전 대표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손 대표와 김 지사의 변신이 필요한 이유다. 국민들은 여러 예비후보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대통령 선거를 보고 싶어 한다.
성기철논설위원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