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식물 이야기] 고향 떠나 사랑받은 불로화

입력 2010-11-08 17:46


고향을 떠나서야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된 식물이 있다. 불로화(不老花)라는 고혹적인 이름을 가진 이 한해살이풀의 고향은 멕시코다.

불로화라는 이름은 학명인 ‘Ageratum’이 그리스어의 ‘늙지 않는다’는 뜻을 가진 데에서 왔다. 7월쯤부터 늦가을까지 계속 피어나는 이 꽃을 두고 붙인 이름으로는 제법 잘 어울린다. 한 송이 꽃이 피고 지면, 다른 꽃이 피고 지면서 서너 달에 걸쳐 그야말로 결코 늙지 않고 영원히 피어날 것만 같은 끈질긴 생명력의 풀이다.

꽃송이 하나하나를 떼어놓고 보면 작을 뿐 아니라, 그다지 볼품도 없다. 활짝 피었다고 해 봐야 한 송이 지름이 1㎝도 채 안되는 정도다. 하지만 긴 털이 수북이 덮인 꽃송이들은 줄기 끝에 모여서 피어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포근하고 풍성한 느낌을 준다. 특히 거개의 꽃이 시들어 떨어진 가을 정원에서 흔치 않은 보랏빛 꽃을 피우기 때문에 정원 운치를 한껏 돋우기에는 더없이 좋다.

게다가 한 해밖에 살지 못하는 짧은 생명의 식물임에도 키가 60㎝까지 자란다는 것도 사랑받는 이유다. 생명력이 강해서 키우기 쉽다는 것은 그를 사랑하면서 얻을 수 있는 덤이다. 꽃이 지고 나서 떨어진 씨앗은 주변에 저절로 자리를 잡고 이듬해에 다시 싹을 틔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처럼 관상용으로 애호가들의 극진한 대접을 받고 제자리를 넓혀왔지만 고향인 멕시코에서 환영받지 못한 식물이다. 흔해서 쉽게 볼 수 있고, 그만큼 친근하다 보니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결과다. 예언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고향에서 버림받고 애면글면 살아오던 이 작은 생명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950년대 후반이었다. 다행히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와서 그 존엄한 가치를 인정받고 귀한 대접을 받게 됐다. 보랏빛 솜뭉치처럼 피어나는 꽃을 보고 애호가들은 ‘풀솜꽃’이라는 예쁜 우리말 이름까지 붙여주며 애지중지 심어 키웠다.

돌아보면 우리 토종식물 가운데에도 우리가 그 가치를 알아채지 못하는 동안 외국인들에게 더 사랑받은 식물이 적지 않다. 심지어 아예 우리 이름을 잃고 외국 식물처럼 포장되는 경우까지 있다. 내 곁의 가장 미소한 것이 곧 가장 소중한 것임을 깨닫는 일은 사람에게나 식물에게나 똑같이 해당하는 삶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천리포수목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