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에 갇힌 MBC 연애 프로그램, 이제 깨어날 때

입력 2010-11-08 18:46


초호화 설정 ‘여우의 집사’, 시청자 공감 못 얻어

달콤함만 부각한 ‘우결’… 중장년층 공략 실패


꽃미남 집사(지배인)와의 1일 데이트를 그린 MBC ‘여우의 집사’가 지난 4일 첫 방송에서 시청률 6.3%(AGB닐슨 미디어리서치)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인기 아이돌들의 데이트를 소재로 한 MBC ‘우리 결혼했어요’(우결)도 시청률이 10%대에서 정체 중이어서 신통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반면 tvN ‘러브스위치’, 엠넷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등 케이블 채널의 연애 프로그램들은 케이블 채널로는 매우 높은 시청률인 1%를 가뿐하게 넘기며 순항 중이다. 남녀간의 만남과 교감을 보여주는 연애 프로그램이 지상파 채널과 케이블 채널에서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MBC ‘여우의 집사’는 ‘초호화 리얼 판타지’를 표방했지만 전체적으로 철 지난 포맷을 답습하고 있다. 꽃미남 집사가 여성 주인을 모시면서 데이트를 하는 형식은 3년 전 코미디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애완남 키우기-나는 펫’과 흡사하다. 집사와 여주인이 쇼핑을 하고 밥을 먹으며 미션을 해결하는 구성은 자사의 프로그램인 ‘우결’과 겹쳐진다.

또한 주인 역을 맡은 여성 연예인들이 칵테일 드레스를 입고 리무진을 타는 설정이나, 집사 역을 맡은 남성 연예인들이 주인의 가방을 들어주고, 슬리퍼를 골라오며 ‘하인’을 자처하는 내용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다. 프로그램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사치스럽다” “비현실적이다”라는 시청자의 의견이 줄을 잇는다.

최근 ‘우결’도 연애의 달콤한 이미지에만 천착하면서 시청률이 정체되고 있다. 가상 결혼 버라이어티를 내세운 ‘우결’은 아이돌 커플이 결혼을 했다는 설정 아래, 관계를 쌓아가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아이돌 커플은 부모님 찾아뵙기, 김장하기 등의 미션을 하면서도 달콤하고 귀여운 이미지를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이 때문에 프로그램의 시청자는 대부분이 10∼20대(48.5%)고 중장년층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있다.

MBC의 연애 프로그램이 환상에 근거한다면, 케이블 채널은 연애를 바라보는 남녀의 바람을 현실적으로 그린다. 30여명의 여성들이 1명의 남성을 놓고 자신의 이상형을 찾아가는 ‘러브스위치’의 평균 시청률은 2%에 달한다. 여성 출연자들이 데이트 후보인 남성을 두고 외모, 능력, 매너 등 모든 조건을 꼼꼼하게 따지는 모습에 여성 시청자들은 큰 공감을 표하기 때문이다. 시청률 1%를 넘긴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에서도 남녀 출연자들이 서로의 조건을 평가하고 자신의 바람을 솔직하게 표출하기는 마찬가지다.

김교석 문화평론가는 “‘여우의 집사’는 시청자의 요구를 못 읽은 결과”라면서 “초호화 저택에서 꽃미남이 시중을 드는 데이트를 보면서 공감할 시청자는 적을 것이다. 차라리 솔직하게 연애관을 털어놓는 케이블 채널의 연애 프로그램들이 시청자로부터 공감을 산다”고 지적했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