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한석 교수의 ‘한국어 민속지- 전라남북도 편’ 욕·존댓말 등 지방 토속어 생생

입력 2010-11-08 17:16


“소나무 개와장(지팡이)에 열두도막이 나여도/아리롱 타랑 참고는 못사리라//시집살이 못하믄 친정살이를 하여도//이놈우 아리롱 타랑을 참고 내못살겄네”(진도군 조도의 ‘아리롱 타랑’ 일부)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왕한석(57) 교수가 전라 남·북도 지역의 토착어를 연구해 ‘한국의 언어 민속지-전라남북도 편’(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을 냈다. 한국 각 지방 토착어를 현지에서 직접 채록해 장기적으로 연구하는 ‘언어 민속지’ 간행 작업의 일환이다. 호남 지역 촌락 단위의 언어공동체에서 이뤄진 현지 조사 연구로는 1973년 드레지 박사의 금안리 연구와 95년 서울대 인류학과 조숙정 박사의 금안리 연구에 이어 세 번째라고 한다.

책에는 전남 진도군 조도면 신육리 윳골마을과 전북 고창 고수면 장두리 월계마을 지역의 생태 환경 어휘, 친척 용어 등의 호칭, 존댓말 체계, 속담, 욕과 비속어까지 광범위하게 실려 있다. 단순히 사투리 어휘만 수록한 것이 아니라 조도의 ‘아리롱 타랑’, 고창의 ‘옛날이얘기’ 등 언어 문화 전반을 담았다. 왕 교수가 윳골마을을 선택한 이유는 현지어로 ‘빈담’이라 불리는 특이한 형태의 말이 발달해 있다는 사실을 연구 과정에서 알게 됐기 때문이다. 월계마을은 평야지대의 농촌 마을이라는 특성을 이유로 선택했다.

윳골마을의 존대 체계를 보자. 서울말의 ‘-시-’격인 주체 존대 형태소는 윳골마을에서는 사용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엄매, 외삼춤 가던가?”, “야야, 뒷집 할압씨 가디야?” 하는 식이다. 반면 월계마을의 존댓말 체계는 상당히 발달해 있다. 주체 존대 형태소로는 ‘겨’가 쓰인다. “할매 가겼냐(할머니 가셨냐)?” “아부지 와겼는가(아버지 오셨는가)?” 등이다.

윳골마을의 빈담을 소개한 대목이 재미있다. 빈담은 ‘(웃기려고) 돌려서 하는 말’, ‘견주는 말’, ‘토다는 말’을 뜻한다. 농담이나 우스갯소리가 그저 ‘남을 웃기는 말’이라면, 빈담은 수사적인 성격을 강하게 띤다. ‘피창(순대) 하러 간다’는 순대를 만들러 간다는 뜻이 아니라 ‘창자 속에 뭘 넣으러 간다’, 즉 ‘먹으러 간다’는 뜻이다. ‘배꽁(배꼽)이 모실(마을) 간다’는 말은 밥을 많이 먹은 뒤 배가 불러 배꼽이 없어졌다는 뜻이라고 한다. ‘야가로하뭔?’은 ‘뭣 하로 가야?’라는 뜻이다. ‘뭣 하로 가야’를 거꾸로 하면 ‘야가로하뭔’이 되기 때문이다. 조도의 다른 마을들에서는 ‘윳골 빈담한다’는 표현도 있단다.

학계의 연구자들을 염두에 두고 쓴 학술서이긴 하나, 현지 주민들과 부대끼며 언어를 채록한 교수의 노고가 생생히 묻어나 눈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옛 말, 고장과 마을마다 다른 빛깔을 지닌 풍요한 어휘들의 운명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양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