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 인터뷰] 박재완 고용노동부장관 “노동시간 단축, 근로자 소득감소 감내해야”

입력 2010-11-08 21:06


대담=임항 전문기자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자 실세로 통한다. 그는 현 정부 들어 정권 인수위원회, 청와대 정무수석과 국정기획수석, 고용노동부 장관에 이르기까지 잡음도, 이렇다할 스캔들도 없이 업무를 수행했다. 그가 이명박 정부 후반기 최대 의제인 공정사회 구축의 한 축을 떠받쳐야 할 고용부 장관이 된 지 8일로 70일이 흘렀다. 장관 집무실에서 지난 4일 그의 정책관과 집행의지를 들었다.

이 장관은 고용정책을 주도하는 고용부의 위상을 어떻게 정립하겠느냐는 질문에 “주도권이 곧 위상이라는 인식은 틀렸다”면서 “주도권 다툼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부처가 일자리 문제를 중심으로 칸막이를 없애고 협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교육과학기술부, 우리(고용부), 지식경제부, 중소기업청 등과 노동과 교육·훈련·자격 연계에서 엇박자나는 곳을 큰 틀에서 정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수석을 할 때와 지금 느끼는 차이는 무엇인가요.

“힘들기는 마찬가집니다. 청와대에서는 기획 위주지만 장관은 정책집행 기능이 있으므로 현장 감각을 키워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로자와 사업주 외에도 구직자, 자영업자, 학생 등 전 국민이 고용부의 고객이 됐구나, 일의 종류는 좀 좁혀졌다고 보는데 대상은 훨씬 넓어졌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모든 일이 우리 일라는 생각도 듭니다.”

-새벽에 출근하는 청와대보다 출·퇴근 시간은 조금 더 여유롭습니까.

“청와대도 퇴근시간이 늦는 것은 아닌데 여기서는 내가 일정을 조율할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여기는 장관이 (늦게까지) 앉아있으면 많은 직원에게 폐를 끼치게 됩니다. 그래서 일이 남아도, 일단 퇴근하고 집에서 업무를 많이 봅니다. 스마트 워크를 해도 장관 일은 워낙 중노동이라서….”

-공정사회 구현의 한 축으로서 고용부의 역할, 그리고 꼭 이뤄내야겠다고 생각하는 ‘박재완 표’ 정책이라고 할만한 게 무엇입니까.

“지난해 말 노동관계법 개정을 통해 복수노조와 전임자 문제가 일단락되면서 1987년 체제의 열정과 성과 같은 국면은 좀 뛰어넘어야 되는 것 아닌가 합니다. 선진일류국가다운 새로운 노사관계 패러다임을 정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분규 없이 잘 지냈다’ 정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사가 정부나 제3자의 영향력을 벗어나 사회적 책임을 강하게 느끼면서 실질적으로 상생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즉 작업장 혁신을 통해 생산성과 삶의 질을 높이고, 일자리도 늘리는 것입니다.”

-구체적 정책 수단으로 어떤 것을 구상하고 계십니까.

“상당수 근로자는 장시간 일을 하고 있지만 나머지 일부 근로자는 시간제 일자리라도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 이처럼 불공정한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근로자의 실 근로시간을 줄이면 1석5조 정도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일자리 증가, 근로자 삶의 질 제고, 산재 감소, 노동생산성 증가 및 가족가치의 복원 등입니다. 자기계발을 위한 투자까지 더하면 1석6조입니다. 우리나라가 일을 제일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근로자의 60% 정도만 열심히 일하는데, 10%나 그 이상도 함께 일을 할 수 있도록 여건과 제도를 바꾸자고 합의를 이루면 좋겠습니다.”

-정부 계획대로 2020년까지 고용률을 70%로 높이기 위해 ‘장시간노동 체제’를 고치려면 노사정간 대타협을 하거나 초과근로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는 두 가지 방안이 있습니다. 이 둘, 또는 어느 한 가지를 추진할 생각이 있습니까.

“지난해 노사정위원회의 장기적 근로시간 단축 합의 이후 액션플랜이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관련된 다양한 정책적 지원 제도와 개선책을 조만간 발표할 계획입니다. 연간 노동시간을 1800시간대로 줄이자는 합의는 일종의 사회적 대타협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근로자들은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소득 감소를 감내해야 합니다. 사용자도 고용을 늘릴 때 인건비 등의 부담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양쪽의 부담을 모두 덜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장시간 근로 의식개선은 ‘죄수의 딜레마’ 게임하고 비슷합니다. 다른 데는 다 안 하는데 우리가 먼저 하면 손해를 볼 것이라는 인식 말입니다. 따라서 다 함께 동시에 추진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초과근로, 연차휴가 위반 단속은 사실 비용대비 효과가 높지 않습니다. 단속해도 편법으로 우회하고 회피할 수 있기 때문에 행정력만 낭비됩니다.”

-남녀평등을 위한 법과 제도개선이 이뤄졌지만 성 평등지수는 낮아졌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임금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결과적 평등을 높일 구체적 방안이 있습니까.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그랬을 수 있죠. 임금격차는 종합적인 것을 반영합니다. 근속기간을 늘리면 격차가 좁혀질 것이라고 봅니다. 경력단절을 완화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시간제 근로자와 풀타임 근로자 격차 완화, 육아휴직 활성화, 취업여성 보육지원 강화 등의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임금격차의 상당 부분은 여성이라는 요인뿐 아니라 지위, 근속기간, 관리직 비율 차이 등에서 비롯됩니다.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늘리기 위한 적극적 고용개선조치를 확대하겠습니다.”

-‘2020 국가고용전략’이 발표된 후 몇 가지 비판에 대한 보완책이 있습니까. 예컨대 실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근로시간저축휴가’가 제시됐습니다만 남는 연차휴가도 못가는 게 현실입니다. 근로시간 저축휴가제를 활성화 하려면 인센티브와 규제가 따라가야 되는 것 아닙니까. 독일에서는 휴가를 저축했을 때 초과근로수당배율인 1.5배의 시간을 적용하고, 미국은 초과수당배율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근로시간저축휴가제에서 근로자가 적립하는 근로시간에 초과근로수당 할증분을 포함할 계획입니다. 적립되는 시간의 상·하한, 범위, 정산 시기 등은 기업이 사업장별 상황에 적합하게 설계해 도입하도록 운영할 계획입니다. 당초 불경기 때 사용자가 ‘휴가를 미리 가라’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휴가를 미리 주는 데 대한 사용자 인센티브는 생각을 못했지만 검토하겠습니다. 제도를 도입한 기업에는 컨설팅을 지원하고, 장기휴가로 발생하는 대체인력 수요에는 대체인력 채용장려금 등의 지원책을 마련 중입니다.”

-개인노동복지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인 근로시간 산재 임금체불 등의 상황이 악화되고 있습니다.

“체불은 지난해 경제위기 때문에 증가했지만 올해는 나아지고 있습니다. 산재도 지난 8월까지 증가하다 9월에 전년대비 감소했지만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근로시간 증가도 사실이지만 경기호조 때문으로 봅니다. 개인 노동복지 전반으로 놓고 봤을 때 퇴보했다기보다는 크게 나아지지 않은 정도입니다.”

-노조가 노동복지 악화에 제동을 걸지 못한다면 정부는 기존 정책 외에 무엇을 더 해야 할까요. 정부도 무기력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미국과 같은 엄벌주의를 도입하지 않더라도 경제적 제재는 강화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임금체불로 예년에는 연간 2명 정도에 그쳤던 사업주 구속수사가 올 들어 9명으로 늘었습니다. 산업재해도 그간 적발되면 1차적으로 시정명령을 많이 내렸던 게 사실이죠. 그러니까 ‘하다가 걸리면 고치지’라고 생각하나 봐요. 그래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은 걸리면 즉시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관련법령을 개정 중입니다. 차별과 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3대 고용질서 확립에도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근로계약 서면화, 최저임금 준수, 임금체불 예방 등이 그것입니다.”

-고용부는 타임오프(근로시간면제) 제도가 잘 정착되고 있다고 파악합니다. 그러나 비관적 전문가들은 전임자 감축 폭이 10∼15%선에 그칠 것이라고 봅니다.

“노조전임자는 30% 정도 줄 것으로 봤는데 결과적으로 30% 정도 줄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깊이 조사하면 겉으로는 준수하는 것처럼 해놓고 이면에서 편법을 쓰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소문이 나게 마련입니다. 불법·편법 사례가 파악되는 대로 의법조치하면 궁극적으로는 30% 정도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타임오프제는 전임자 수를 줄이는 게 목표가 아니라 노조간부 임금을 노조원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기아자동차 노조도 편법이니 하는 지적이 있지만 전임자 임금 보전을 위한 조합비 인상이 총회나 대의원대회를 거쳐 결정되면 무방합니다.”

-내년 7월부터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가 허용됩니다. 고용부가 무엇을 중점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교섭창구 단일화방안을 둘러싸고 산업현장에서 생길 수 있는 예상 쟁점을 추려 매뉴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 노조원이 복수의 노조에 가입하지는 못하도록 하자는 등 개정된 법조항을 다시 고쳐야 한다는 요구가 있지만 어렵게 합의된 법이므로 일단 시행해 보고 미세조정 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심각한 청년실업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생각입니까. 구체적 행동계획을 밝혀주십시오.

“지난달 발표된 ‘청년 내 일 만들기 1차 프로젝트’에 이어 2차례 더 대책이 나옵니다. 연말까지 2차 프로젝트를 수립하기 위해 관련부처와 협의하고 있습니다. 2020년까지 계획이지만 주로 내년과 내후년에 추진될 과제를 많이 담았습니다.”

-1차 청년고용대책에는 특히 공공부문에서 채용분야별 증원 인원이 100명 단위로 나왔습니다.

“청년 고용문제가 3∼4년 안에 더 심화될 것이기 때문에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공공부문에 일자리 1만4000개를 새로 만드는 것도 그런 맥락입니다. 중소기업·중견기업 청년인턴제가 대기업을 선호하는 청년들의 인식개선에 도움이 돼야 할 것입니다. 현재 중소기업에만 시행중인 이 프로그램에서 중도탈락하지 않고 끝까지 이수하는 비율이 67%입니다. 이수자 중 84%가 정규직으로 채용됩니다. 이것은 굉장히 고무적입니다. 중소기업도 괜찮은 곳이 많이 있다는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박재완 장관은

박재완(55) 고용노동부 장관은 입신양명의 ‘사이클링 히트’를 쳤다고 할 정도로 경력이 화려하다. 행정고시(23회)를 통과해 감사원 등에서 관료의 길을 걷던 그는 성균관대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가 2004년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17대 국회에 입성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부혁신규제개혁 태스크포스(TF) 팀장으로 이명박 정부 출범을 기획했다. 이후 이 대통령의 신임을 얻어 현 정부 초대 정무수석과 국정기획수석을 역임했다.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를 열렬히 응원하는 그는 지난 준플레이오프의 스코어는 물론 잔루 개수까지 기억할 정도로 야구광이다. 그는 “23명이 출루했지만 잔루가 17개였다. 말도 안 되는 기록이다. 준PO 내내 감이 떨어져있던 선수들은 한 경기 정도 빼줘 회복하게 만들었어야 했다”고 분석했다. 박 장관은 업무파악이 매우 빠르고 친밀감과 겸손함까지 갖춰 고용부 직원들로부터 함께 일하기가 편하다는 평을 듣는다. 다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추진을 선도하는 리더형이라기보다 스마트한 전략을 짜는 참모형에 가깝다는 평가가 많다.

박 장관은 워커홀릭으로도 유명하다. 청와대 수석으로 일할 때 집에 가지 않고 사무실에서 자주 자 접이식 간이침대 제품명이 별명이 되기도 했다. 외부 저녁식사 후에도 청와대로 돌아와 직원들이 힘들어했다는 얘기도 있다.

그는 교수시절 경제정의실천연대 정책위원회 의장까지 지낸 경력을 소중하게 여기고 강조한다. 화려한 경력을 쌓아왔던 그에게 고용부 장관은 새로운 도전이다. 세종시 수정안 실패에 책임을 지고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에서 물러난 그이기에 일자리 창출, 노사관계 안정 등 산적한 과제가 퇴근 시간을 더욱 늦추고 있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