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못들어가는 곳에 그림 통해 선교”… 성서화집 낸 서봉남 화백

입력 2010-11-07 17:43


그림으로 볼 수 있는 성경이 나왔다. 서봉남(66·연동교회 안수집사) 화백이 지난 35년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신·구약 총 77편의 성화를 그려 완성한 ‘성서화집’이 그것이다.

“과거 성화를 그렸던 화가들은 성서의 일부만 표현했습니다. 성경 전체를 그리겠다고 다짐하고 시작했으나 저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일단 예수님의 일생을 담은 신약을 먼저 그렸습니다.”

1977년 성화를 처음 그리기 시작한 이래 20년 만에 45편의 작품으로 신약을 완성하고 전시회도 열었다. 서 화백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15년에 걸쳐 구약 24편, 사도시대 5편, 현대 3편의 성화를 완성했다.

“작품 하나를 그리려면 평균 6개월이 걸립니다. 먼저 성경을 읽고, 기도를 드린 뒤 작품을 구상해요. 일본, 중국, 인도, 프랑스, 독일 등 32개국을 돌며 15년간 자료를 수집했고, 그걸 기반으로 ‘기독교미술사’란 책도 썼습니다.”

서 화백이 넉넉해 이런 ‘대업’을 꿈꾼 것이 아니다. 성화를 그리는 내내 생활고에 시달렸다. 심부전증으로 인해 아내는 혈액투석을 받고 있다. 가족의 이름으로 보험 한 번 들어본 적 없고, 두 자녀에겐 “아빠는 가난한 예술가”라고 늘 말했다.

그래도 명색이 프랑스 국립 에브리박물관에 자신의 작품 ‘영광’을 걸어놓은 ‘국제적인 작가’이다. 이 작품은 서 화백이 1984년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에 맞춰 선보인 4000호 대작이다.

“100년에 걸친 한국 기독교의 역사를 정말 크고 멋지고 감동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이를 위해선 1000만원이 필요했습니다. 제가 돈이 어디 있습니까. 당시 처음으로 장만한 아파트를 팔아 재료를 준비하고, 2년 반에 걸쳐 ‘영광’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전시회를 마치고 교회들에서 기증 문의가 잇따랐고, 한 이단에선 2억원에 작품을 팔라고도 했다.

“당시 가정 형편이 어려워 유혹에 잠깐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아내가 ‘예술가이기 이전에 신앙인으로서 양심을 저버리지 말자’고 했어요. 결국 그 작품은 20년간 창고에 있다가 프랑스로 건너갔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제 이름으로 된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했네요.”

서 화백이 오로지 성화만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3대째 믿음의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미술대회에서 1등을 하며 그림을 그리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목회자가 될 것을 강권하는 아버지와 마찰을 빚었고, 갈등을 피해 군에 자원입대했다. 결혼도 일찍 해 분가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가끔씩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러다 그는 꿈에서 아브라함으로 보이는 유대 노인을 만났다. 새벽녘 교회 종소리를 들으며 깨어난 그는 그동안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비롯된 자신의 억눌린 감정들을 토해내며 기도했다. 그리고 6년 뒤, 이번에는 꿈속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고난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저를 예수님이 꼭 안아주시고는 저에게 ‘너의 달란트가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잠을 깬 그는 비로소 “제 달란트는 기독교미술입니다”라고 고백했다. 그때 그의 나이 서른 셋, 성화를 위해 처음 붓을 잡았다.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달란트로 이 땅에 복음을 전하는 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은 겁니다.”

30대 초반에 다짐한 그의 꿈은 30년을 지나 비로소 이루어졌다. 그는 이제 새로운 비전을 세웠다. 남은 생애 성서화집을 통해 세계 선교를 꿈꾸고 있다. “성서화집 수익금은 전액 선교하는 데 쓸 것입니다. 글자로 된 성경이 못 들어가는 곳에 눈으로 감상할 수 있는 이 성서화집을 보내고, 선교의 한 축을 감당할 것입니다.”

노희경 기자, 이사야 인턴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