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최상현] 북한을 티베트로 아나

입력 2010-11-07 18:58


말이 아니면 대꾸를 말고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 했지만 이것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다. 갑자기 졸부가 돼 스스로 대국(大國)이라고 우쭐대는 중국의 역사 인식은 대국답기는커녕 놀랍도록 편협하고 잘못됐다. 한국전쟁에 중국 인민해방군이 참전한 것을 그들은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서기 위한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전쟁이 북침에 의해 일어났다는 것 아닌가. 어이없는 역사 인식이다. 더구나 이런 말이 차기 지도자로 자리 매김한 공산당 중앙 군사위원회 부주석 시진핑(習近平) 입에서 나왔으니 예사롭게 넘길 수 없다. 이렇게 잘못된 인식으로 중국을 이끌어 간다고 볼 때 장차 중국이 어떤 나라가 될지 염려되지 않을 수 없다.

어이없는 중국의 역사 인식

한국전쟁은 소련의 국가 기밀문서도 남침임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우리가 북침했다면 어떻게 유엔 파병 결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며 침략에 맞선 대의(大義)가 아니라면 어떻게 세계 16개국의 참전을 이끌어낼 수 있었겠는가. 그때는 아니었다 할지라도 지금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유엔 결의를 뒤집는 발언을 하고 나선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중국은 왜 세계의 보편적인 경제운용 방식에 의해 경제대국이 됐으면서 의식 수준은 보편적 가치의 넓은 무대로 나오지 못하는 것인가. 왜 역사에 대해 거짓을 말하는 것인가. 대국으로서 가야 할 당당한 길을 놓아두고 거꾸로 비좁고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서서 북한과 쑥덕거리는 것인가. 이렇게 함으로써 동북 3성(省)의 동해 진출로는 얻어낼지 모르지만 북한을 속국화하거나 먹어치울 수 없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그것이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그들도 짐작은 하고 있을 것이다. 한마디만 해두겠다. 북한은 티베트가 될 수 없다. 그들도 잘 알 것이다.

중국은 뭔가를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중국을 잘못 알았다. 중국은 일시 한국전쟁 참전의 우(愚)는 범했지만 거대하고 깊은 역사와 문화·학문적 배경이 있는 나라다. 따라서 미래로 가는 행보(行步)에서만은 우리와 공감하고, 가치와 진실을 공유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이 함부로 내뱉는 거친 수사(修辭)와 이를 통해 내비치는 속마음은 그런 믿음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북에 의한 것으로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국제적으로 공인된 천안함 폭침 사태에서도 저들은 진실의 길에서 벗어나 지나치게 북에 편향된 자세를 보였다. 피해자의 아픔을 헤아리는 배려보다 가해자를 감싸기에 바빴다. 북 도발에 대한 당연한 대응인 한·미 연합 군사훈련 과정에서도 저들이 관영 언론 등을 통해 퍼부은 폭언과 신경질적 반응은 도무지 대국의 체모와 어울리는 것이 아니었다.



시진핑 실언이 문제되자 중국은 자신들이 참전하기 이전의 한국전쟁 초기를 조선전쟁, 참전한 후기를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으로 나누어 교묘하게 발언을 합리화하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것도 말이 안 된다. 자국의 국가 보위를 위해 미국의 참전에 맞선 것이 항미원조전쟁이요, 정의로운 것이었다고 말하는 것인데, 이것이나 그것이나 전쟁을 일으킨 북한의 불의를 도운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또 미군이나 한국군이 중국 영토를 범한 적이 없는데 무슨 중국의 국가 보위를 위해 그 전쟁이 필요했고 정의롭다는 것인가. 침략 세력을 돕기 위해 군대를 투입해 우리에게 참혹한 비극을 강요해 놓고 무슨 가당치 않은 변명이고 궤변인가.

시진핑 발언 정중히 사과해야

중국은 거짓말과 궤변으로 사태를 호도하려 할 것이 아니라 시진핑 실언이 우리에게 안겨준 아픔과 모독감에 대해 정중히 사과하고 해명해야 옳다. 그것이 대국답게 공정하고 바르게 처신하는 길이다. 양국 관계 발전이나 우호적 감정의 조성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 아니겠는가.

최상현(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