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88선언’ 주역… 서광선 박사 비화 공개
입력 2010-11-07 19:46
서광선(이화여대 명예교수) 박사가 1988년 2월 29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발표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88선언)과 관련한 비화를 공개했다.
그는 6일 오후 새문안교회 언더우드교육관에서 열린 한국기독교역사학회와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주최의 학술심포지엄 기조강연을 통해 “80년대 당시 NCCK 선교교육원 원장이었던 오재식 박사가 ‘한국 기독교의 통일논의를 통해 통일문서를 만들자’고 해서 9인 위원회를 조직했다”고 밝혔다. 서 박사에 따르면 9인 위원은 오 박사와 서 박사를 비롯해 강문규 이삼열 노정선 민영진 김창락 박사, 고 홍근수 목사, 김용복 목사 등이다. 그는 “9명은 늘 정보부의 감시를 받았기 때문에 서울 시내 여러 곳을 전전하며 모여야 했다”며 “목숨을 걸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서 박사는 “신학 부문에서는 남북 분단이 원죄임을 언급했고, 남북한 정부 건의사항에는 7·4 공동성명의 세 가지 원칙, 즉 평화적 방법, 주체적 민족자주, 이념을 초월한 민족 대단결의 원칙에다 인도주의와 민중참여의 원칙 두 가지를 덧붙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목사와 학자들이 서로 의견이 달라 모이기만 하면 얼굴을 붉히고 싸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어려웠던 게 이삼열 박사가 주도했던 신학부문”이라며 “9명의 위원들이 만장일치로 선언서 초안을 승인한 것은 기적이다. 지금 생각해도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서 박사는 또 “88년 당시 이홍구 통일원장관의 요청으로 통일원 국장 10여명을 모아놓고 88선언을 해설하기도 했다”며 “이후 남북 총리회담이 열려 91년 남북기본합의서가 나온 것도 88선언의 영향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비교 연구를 해보니 남북기본합의서의 80% 이상이 88선언을 정책적으로 표절한 내용이었다”며 “88선언은 냉전시대에 통일의 물꼬를 텄을 뿐만 아니라 이후 통일을 지향하는 10년 정권의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8·15 해방부터 계산해서 49년이 지난 50년째엔 제2의 해방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95년을 한국 통일의 희년으로 선포했다. 95년도를 넘긴 지도 벌써 15년이 지났지만 희년은 아직도 우리 머릿속에만 있다”며 “평화와 통일, 화해 협력이 점점 더 멀어져 가는 현실을 보며 다시 한번 통일문서가 나와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날 심포지엄엔 한승헌 변호사,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 등 시민단체와 학계, 교계 관계자 50여명이 참석했다.
글·사진=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