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협상] 픽업트럭 관세 마지막 관문… 환경기준 완화도 쟁점
입력 2010-11-05 21:25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위한 마지막 관문은 자동차 시장 개방이다. 2007년 체결된 협정문상 우리에게 결코 유리한 조항은 없다. 그럼에도 미국은 자동차 무역불균형을 내세우며 픽업트럭에 관한 기존 합의문 내용 수정과 연비 등 비관세장벽 완화를 거세게 요구하면서 이 부분만 타결되면 FTA에 최종 합의할 수 있다고 압박하고 있다.
◇미국, 픽업트럭에 집착하는 배경=미국 자동차 산업은 노동자 계층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민주당에 있어 정치적 생명이 걸린 사안이다. 자동차 산업의 하향세를 막지 못할 경우 경기방어는 물론 정치적 지지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어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에도 수출용 승용차와 트럭을 생산하는 포드자동차 공장이 있다.
포드 등 미국의 자동차 메이커들도 이를 이용해 중간선거 이전부터 한국시장 진입을 확대할 수 있는 확실한 방안을 요구하는 한편 자국 픽업트럭 시장 방어를 위한 한·미 FTA 수정을 줄기차게 요구했었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 관계자는 5일 “미국 자동차사의 경우 픽업트럭 사업에서 최대 이익을 챙기고 있다”며 “승용차 시장의 점유율에서 일본과 우리 기업에 밀리고 있으니 픽업트럭은 지켜야 한다는 위기감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내 픽업트럭 판매가격은 5만~7만 달러(5600만~7800만원) 수준이다. BMW 등 고급승용차 가격에 못지 않아 캐시카우(수익창출원)로 통한다.
미국은 1960년대 유럽을 상대로 한 무역에서 보복관세 형태로 픽업트럭에 대한 관세율을 25%로 설정한 뒤 현재까지 이를 유지하고 있다. 한·미 FTA에서조차 우리나라가 픽업트럭에 매기는 10% 관세율을 즉시 철폐하기로 한 반면 자동차 선진국인 미국이 오히려 10년간 25%의 관세율을 점진적으로 철폐하겠다며 소극적으로 합의했을 정도다.
산업연구원 이항구 기계산업팀장도 “미국 전체 자동차 시장의 판매 물량 가운데 픽업트럭과 대형 SUV차량 비중이 50%를 넘는다”라며 “포드의 경우 대우를 인수한 GM에 비해 한국 시장 내 점유율이 현격히 떨어지는 것도 적극적인 대응에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비 등 비관세장벽도 쟁점=이명박 정부의 국정과제인 녹색성장과 관련 연비 등 자동차 연료 소비효율성 규제가 대폭 강화된 것도 미국 측의 불만사항이다. 미국은 현재 ℓ당 11.7㎞인 승용차 연비 기준을 2016년부터 ℓ당 16.1㎞로 강화하기로 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배기량별로 ℓ당 12.4㎞(1600㏄ 이하), 9.6㎞(1600㏄ 초과)인 연비기준을 2015년부터 배기량에 관계없이 17㎞로 일괄 상향해 미국보다 높은 기준을 적용할 예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이 자국보다 높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을 두고 비관세장벽이 아니냐고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낮은 시장점유율도 우리나라에 대한 압박카드로 동원되고 있다. 올 들어 8월까지 한국의 미국차 수입규모가 5억3600만 달러 수준인 데 비해 한국차의 미국 수출액은 74억500만 달러로 13.8배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은 국내 안전과 배출가스 기준이 비관세 무역장벽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규제의 문턱을 낮추는 데 협상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협정문 자체에 대한 수정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비관세 규제에 대한 합의 가능성은 내비치고 있다. 2007년 합의된 FTA에도 자동차 연비 및 온실가스 배출기준에 대해선 아예 FTA에 관련 내용을 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협정문을 건드리지 않고도 미국의 요구를 일부 반영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들은 “한·미 FTA 실무협의가 마무리되기 위해선 양측 모두 수용 가능한 요구가 제시돼야 한다는 전제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정동권 기자 danch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