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美 양적완화’ 대응 골머리… 달러홍수에 ‘외환 둑’ 무너질라
입력 2010-11-05 18:00
미국의 추가 양적완화 조치 발표 후 신흥국 진영의 움직임이 긴박해지고 있다. 넘치는 ‘달러 폭우’에 대비해 자국 외환시장에 둑을 쌓아둬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신흥국 진영의 달러 옥죄기가 본격화될 경우 지난달 경주에서 “경쟁적 통화절하를 자제하자”던 주요 20개국(G20) 간 합의도 뿌리째 흔들릴 수 있어 G20 정상회의에서 다시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게 생겼다.
◇신흥국 진영 불만 고조=시장의 기대치를 뛰어넘은 미국의 양적완화 소식에 우리나라 등 주요 신흥국 증권시장은 상승세로 화답했지만 이를 지켜보는 정부당국들 속내는 복잡하다. 경기가 실제로 좋아진 결과이기 보다는 시장에 흘러 다니는 달러화 규모가 늘어난 데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달러화가 넘쳐날수록 선진국에서 신흥국 시장으로의 자본이동은 더욱 극심해져 자칫 달러 홍수로 신흥국 외환시장이 기능마비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러한 고민은 외환시장 규모가 작은 신흥국일수록 더하다. 태국 등 1997년 외환 위기를 경험한 나라를 중심으로 아시아 국가의 공동대응 방안이 거론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5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콘 차티카와닛 태국 재무장관은 미국의 추가 양적완화와 관련해 “아시아 국가 통화에 대한 투기방지를 위해 공동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제티 아크타르 아지즈 말레이시아 중앙은행 총재도 “시장안정화를 위해 필요하다면 해외 자본유입에 대한 공동대응에 참여할 것”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지난달 경주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에 특별초청국으로 참석했던 베트남의 대응은 훨씬 강경하다. 레 둑 투이 베트남 금융감독위원장은 5일 “동(dong)화가치 하락 방지를 위해 매달 수억 달러 규모의 달러화를 매도할 계획”이라며 외환시장 직접개입 의사를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베트남 중앙은행은 이 발언이 나오자마자 이날 기준금리를 무려 1.0% 포인트나 기습 인상했다. 이 수준은 통상 0.25% 포인트 인상해 온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수치다. 지난달 물가상승률이 9.66%로 10%나 육박하는 인플레이션에 시달려온 베트남은 자국 화폐의 급격한 가치 하락까지 경험하고 있다. 홍콩과 필리핀도 각각 자산 매입에 대한 규제를 발표하고 대규모 채권 발행을 서두르고 있다.
일본도 “외환시장의 급격한 변동성을 좌시하지 않겠다”며 직접 개입을 암시하는 구두개입을 지속하는 등 G20 회원국도 외환시장 안정화 조치에 골몰하고 있는 형국이다.
◇안팎의 도전에 직면한 G20=미국은 이번 양적완화가 글로벌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달 경주 공동선언문에도 각국의 통화정책을 용인하는 문구가 포함된 만큼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공동선언문에는 “물가안정을 달성하는 데 적절한 방향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함으로써 경제회복에 기여한다”는 통화정책의 기본원칙을 재확인하는 문구가 삽입됐다.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 관계자는 “각국 중앙은행의 기본목표를 수행하는 통화정책은 용인한다는 내용”이라며 “미국의 양적완화를 암시하는 문구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국이 자국 통화가치를 끌어내리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경제회복에 기여하기 위한’ 통화정책의 일환이라고 주장하는 한 합의된 공동선언문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은 셈이어서 선언문 해석을 두고 논쟁이 예상된다. 더욱이 중국이 추가 양적완화에 대한 해명까지 요구하고 있어 G20 정상회의에서 양국 간 갈등이 표면화될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G20 준비위 다른 관계자는 “이번 정상회의에서 환율 관련 액션플랜 논의 이전에 기존 합의의 틀 준수 여부를 둔 격론도 있을 수 있다”며 “브라질 등 환율 강경론을 유지하는 국가의 미국을 향한 성토가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정동권 기자 danch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