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볼라드… 시각장애인 멍든다
입력 2010-11-05 18:18
시각장애인 하성준(33)씨는 지난달 서울 지하철 2호선 건대입구역 인근 도로에서 봉변을 당했다. 시각장애인의 보행을 돕기 위한 유도블록 위에 설치된 대리석 재질의 볼라드(자동차 진입억제용 말뚝)에 무릎을 부딪친 것이다. 예상치 못했던 충격에 하씨는 그 자리에 10분 동안 주저앉았다. 하씨는 “잊고 살았던 장애의 설움이 순간적으로 밀려왔다”고 말했다.
서울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음악 강사로 일하는 임희남(39)씨도 1995년 서울 효자동 경복궁역 인근 도로에서 볼라드와 충돌했다. 이후 임씨는 심한 관절염을 앓았고 안마 일을 그만둬야 했다. 임씨는 지금도 주2회 치료를 받고 있다.
성인 무릎 높이의 볼라드가 시각장애인의 보행권을 크게 위축시키고 예측치 못한 충돌 사고를 일으키고 있다. 참다못한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소속 회원 20여명은 5일 서울 지하철 1호선 시청역 인근에서 볼라드 철거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최동익 회장은 “볼라드의 완전 철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근거법인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에 관한 법에 맞게 정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련법에 따르면 볼라드는 보행자의 안전한 통행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 또 볼라드 설치 지역에는 30㎝ 앞에 점형 블록을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법과 현실은 다르다. 대리석이나 강철 재질의 볼라드가 유도블록 위에 있다. 볼라드 설치 사실을 알리는 점형블록은 거의 없다. 서울시가 파악한 부적격 볼라드는 전체 3만7000여개 가운데 2만5700여개에 달한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현 국가권익위원회)는 2007년 11월 자체 조사를 벌여 국토해양부에 “자동차 진입억제용 말뚝 설치법을 신설하고 지자체에 불량 볼라드 시정명령을 내릴 것”을 권고했다. 국토부는 지난해 말 보행우선구역에만 적용됐던 볼라드 재질 및 설치 규정을 일반 도로까지 확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6월 ‘볼라드 정비계획’을 세워 구청으로부터 2년째 정비 실적을 보고받고 있지만 실적은 미미하다. 지난해와 올해 서울시내 25개 자치구의 볼라드 정비 실적은 5일 현재 1489개로 정비 대상의 5.7%에 불과했다. 도봉구 중구 노원구 성북구 구로구 금천구 강남구는 지난해 정비 실적이 아예 없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