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성 시집 ‘타일의 모든 것’… 매끈한 타일 뒤의 모습처럼 도시적 일상 이면의 황폐함

입력 2010-11-05 17:19


우리의 일상이 평면거울이 아니라 볼록거울에 비쳐진다면? 일상은 찌그러지고 뒤틀린 기형적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다. 시인 이기성(44·아래 사진)의 심상에는 볼록거울이 설치되어 있는 듯 하다.

그의 두 번째 시집 ‘타일의 모든 것’(문학과지성사)에 투영된 시적 풍경은 찌그러지고 뒤틀려 있다. “아빠여, 우리의 세계는 흐릿합니다/오늘부터 줄넘기의 규칙이 없어지고/공중에 떠오른 스무 개의 발과 스무 개의 발이 동시에 착지를/붉은 등과 파란 등이 동시에 켜지고/아빠의 귀가 점점 커집니다 목도 길게 늘어나지요”(‘줄넘기’ 일부)

이기성의 볼록거울에 아빠의 줄넘기가 비치고 있다. 한 가정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늘 줄넘기를 해야 하는 아빠의 완고하고 지속적인 세계는 거울이라는 표면에서 여지없이 해체된다. 문제는 해체의 방식이다. 시 ‘줄넘기’는 다음 연에서 “120킬로를 훌쩍 넘은 몸이 공중에 떠 있을 때,/떨어지는 햇빛에 걸려 꿈틀거리는 아빠여”로 이미지 분화를 일으킨다. 시적 화자는 이어 공포에 질린 듯 “이런, 떨어지는 줄에 발이 걸려/가족들은 갑자기 아빠를 발견하고/얘야, 너는 가족을 잃었구나/줄넘기를 잘하는 미아가 되었구나 그리고/아이의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울부짖는 것입니다”라고 종말적인 분위기를 이입시킨다.

시인은 폐허와 허무가 도사리고 있는 삶의 끝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작법은 이번 시집의 특징이기도 한데 그 특징은 시집에서 자주 반복되고 있는 ‘타일’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것을 안다, 나는 그것을/사랑하고 타일이라고 부른다, 타일은 흰 접시를 두들기고/침을 흘리고 양탄자에 오줌을 싼다, 아파트에 들일 수 없는 더러운 짐승”(‘타일의 모든 것’ 일부)

타일의 매끄러운 표면은 일상의 이면을 임시로 덮은 일종의 위장술일 뿐이다. 일견 타일은 견고해보이지만 모자이크로 박힌 타일이 떨어지고 나면 거기엔 오물과 냄새로 뒤범벅된 오염된 세계가 펼쳐지게 마련이다. 완강하고 단단하게 세계를 지탱해왔던 ‘타일’이라는 표면이 붕괴된 후의 세계야말로 우리가 믿어왔던 세계의 진실을 뒤집는 불가항력적인 증언자가 되는 것이다. 표면의 붕괴, 그건 가식적이고 장식적인 우리 얼굴의 붕괴와도 맞물린다. “안개의 타일 속에서 웃는 소녀들 조용히 퍼져 나가 금세 딱딱해지는 소문들 잿빛 거미처럼 아파트 회벽에 달라붙는 여자들 속삭이는 타일 속에서 흘러내리는 침들 이름을 잃어버려 엉엉 우는 별들”(‘타일의 마을’ 일부)

매끈한 타일에 가려진 뒷모습처럼 화려한 도시적 일상 이면의 황폐함을 드러내는 시 50여편이 담겼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