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변재운] 교실환경 바꿔야 공교육 산다

입력 2010-11-04 17:42


경기도 모 중학교 국어교사 J씨의 책상 서랍에는 몇 권의 시집과 시를 복사한 프린트물이 들어있다. 용도는 학생 통제를 위한 것. 수업시간에 장난을 치는 등 잘못을 하는 학생에게 시 한 편을 주고 외우게 한다. 학생은 수업이 끝나도 선생님 앞에서 시를 암송할 때까지 집에 가지 못한다.

효과는 만점이다. 시를 받아든 학생은 “차라리 때려 달라”고 주문할 정도로 강력한 통제의 수단이 됐다. 학생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체벌보다도 집에 늦게 가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시 한 편을 외운 학생은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얻는다고 한다.

서울시교육청이 이달부터 초·중·고교에서 체벌을 금지토록 한 데 대해 일선 교사들의 불만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다루기 힘든데, 무조건 체벌을 금지하면 어떻게 통제를 하느냐는 것이다. 일부 언론은 마치 하루 이틀 사이에 교실이 난장판이 된 것처럼 묘사하기도 한다.

학생통제에 에너지 너무 소모

아직 여건이 성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서울시교육청이 성급하게 체벌금지 조치를 취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체벌이 없으면 학생 통제가 불가능한 것처럼 여기는 교사들 자세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한마디로 가장 손쉬운 통제수단을 유지하게 해 달라는 것인데, 너무 쉽게 가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임용고시 경쟁에서 알 수 있듯 우리나라에서 교직은 매우 좋은 직업이다. 일부 고3 교사를 제외하고는 하루 8시간 근무가 철저히 지켜지는 데다 1년에 2∼3개월의 방학이 있다. 이를 감안해 시간당 임금으로 따지면 고참교사는 억대 연봉자에 버금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교육지표에 따르면 한국 교원 연봉은 구매력 기준으로 회원국 중 가장 많았다. 교총과 전교조는 구매력 기준이 실제와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어찌 됐든 처우가 선진국에 비해 나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만 62세까지 정년이 보장된다. 이렇게 좋은 조건에 선진국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체벌, 즉 손쉽게 학생 통제가 가능한 수단까지 주어진다면 정말로 좋은 직업 아닌가.

물론 우리나라 교실환경은 선진국에 비해 열악한 것도 사실이다. 교육전문가나 현장의 교사들이나 한결같이 하는 말은 학급당 학생 수가 많아 학생들을 통제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것이다. 정작 교육에 쏟아야 할 열정의 상당부분을 빼앗겨 교육의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OECD 회원국의 학급당 학생 수는 평균 21명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중·고교의 경우 34명에 달한다.

그릇된 행동은 무관심과 익명성에서 비롯된다. 20명 정도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학생들의 집중도가 높아지고, 급우 간 가족적 분위기가 형성돼 소위 ‘왕따’ 문제도 크게 줄어든다고 한다. 최근 학부모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혁신학교의 가장 큰 성공 이유가 학급당 20명 안팎의 적은 학생 수라는 분석이 많다.

학급당 학생수 대폭 줄여야

그런데도 우리나라 교원 수는 3년째 동결됐다. 저출산과 학령인구 감소로 나중에 교사가 남아돌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저출산으로 학급당 학생 수가 선진국 수준에 맞춰지려면 수십 년은 지나야 될 것 같다. 저출산 주범으로 일컬어지는 사교육비는 부실한 공교육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는 거꾸로 공교육만 바로 서면 출산율이 높아질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우리 교사들의 자질은 비교적 높은 수준이다. 여건만 만들어주면 충분히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학급당 34명씩 몰아넣고, 15∼20명 수준인 학원과 경쟁하라는 것이 문제다. 학원들은 저 멀리 앞서가고 있는데, 학교 교사는 교실 통제에 저렇게 목을 매야 하니 어느 세월에 경쟁력을 갖출까.

변재운 논설위원 jwb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