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정윤희] 늦어도 11월에는
입력 2010-11-04 17:43
11월이 되면 ‘늦어도 11월에는’이라는 장편소설이 떠오른다. 2002년 뜨거웠던 월드컵 응원 열기가 가라앉고 지금처럼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던 11월 가을에 이 책을 만났다. 책을 선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이 때 순전히 책 제목 때문에 골랐다. ‘늦,어,도,11월,에,는’이라는 언어가 뿜어내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나를 단숨에 사로잡았고, 매년 11월이 되면 서가에 꽂힌 이 소설을 다시 꺼내 읽는다. 소설을 쓴 한스 에리히 노삭은 사르트르로부터 “전후 독일문학의 대표적 작가이며 세계적인 소설가”라는 극찬을 받았다. 1955년에 발표한 이 작품은 독일 최고의 문학상인 게오르크 뷔흐너 상을 받았다.
“당신과 함께라면 이대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안락한 재벌가의 며느리 마리안네의 대사가 보여주듯 읽어보면 남녀의 사랑을 그린 지극히 통속적인 연애소설이다. 그것도 아주 뜨거운.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성경 말씀처럼 이 세상에 사랑을 빼놓고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가페, 플라토닉, 에로스. 세 가지 사랑의 명제들이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며 우리 삶을 직조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의 한 공업도시가 이 소설의 배경이다. 상공인협회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문학상 시상식이 갤러리에서 열리는데 이 상의 수상자는 서른네 살의 작가 베르톨트 묀켄이다. 그리고 스물여덟 살의 아름다운 유부녀 마리안네. 사회사업의 일환으로 문학상을 주관하는 헬데겐사의 사장 막스의 아내로, 사업에 바빠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한 남편을 대신해 억지로 나와 앉아 있다. 묀켄과 마리안네, 두 사람의 운명적인 사랑은 이렇게 시작된다. 11월이면 묀켄이 쓴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고, 돈을 받으면 낡은 폴크스 바겐을 사서 떠나자고 약속했던 두 사람의 운명은 결국 비극적으로 끝을 맺는다. 이와 비슷한 소설이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으로 정비석 작가의 ‘자유부인’ 정도 될까.
1955년에 발표된 독일의 전후문학이 21세기인 지금 읽어도 전혀 낯설지 않은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격히 진행된 자본주의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 위기와 여성의 자아실현이라는 문제의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통속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사회적 문제의식으로 점철돼 있는 연애소설이라 책장을 덮은 뒤에도 먹먹한 마음에 이야기의 여운이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날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에 관해 글을 쓴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점은 의심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이지만 편협한 생존에만 관심이 있던 과거에 꿈을 실현한다는 것은 어려운 얘기였다.”
1950년대 그 시대나, 2010년 이 시대나, 편협한 생존을 위해 아웅다웅하다가 끝나는 것일까. 늦어도 11월에는 꼭 이루고 싶었던 주인공들의 염원이 죽음으로 결말을 맺게 돼 가슴이 시리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늦어도 11월에는 꼭 이루고 싶었던 소망이 무엇이었나 생각해 본다.
정윤희 출판저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