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도어 시장이 미쳤다… 세계가 놀란 이례적 급성장, 까닭은?

입력 2010-11-04 18:03


“등산복을 한번 입어보면 다른 옷 못 입는다. 얼마나 가볍고 편하냐. 다운재킷 입었던 사람은 모직코트 못 입는다.”(한형석 몽벨 마케팅팀 과장)

“부모님 회갑이나 칠순 선물로 뭐가 최고 인기인지 아나? 등산복이다. 아이들 입학이나 졸업 선물로 뭐가 최고 인기인지 아나? 다운재킷이다.”(장희수 노스페이스 홍보팀 대리)

“요즘 해외여행 가는 사람들 봐라. 등산복 차림이 부쩍 늘었다. 골프장에도 등산복 차림이 많다.” (박은주 블랙야크 홍보실 과장)

요즘 등산복이 대세다. 산에 갈 때 입는 옷으로 알았던 등산복이 외출용, 운동용, 여행용, 출근용으로 폭넓게 이용된다. 산이나 여행지는 물론이고 도시나 사무실에서도 등산복 차림을 흔하게 만날 수 있다. 등산복 인기에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전문 산악인을 위해 만들어진 등산복이 전 국민의 일상복이 됐다.

10년간 6배 성장

국내 아웃도어 시장은 지난 5년간 3배로 커졌다. 노스페이스는 업계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97년 영원무역이 들여온 이 브랜드는 2003년부터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2003년 매출액은 800억원. 2004년에 1000억원을 넘었고, 2007년 3200억원, 2009년 450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매출액은 5200억원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 8년간 6.5배 성장했다.

업계 2위 코오롱스포츠의 올 매출액 목표는 3800억원. 2006년 매출액(1700억원)과 비교하면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코오롱스포츠는 2006년 이후 해마다 500억∼600억원의 매출 신장을 기록해 왔다.

노스페이스 코오롱스포츠 두 회사만 합쳐도 올해 매출액이 9000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K2, 컬럼비아, 블랙야크 등을 더하면 매출액은 1조5000억원이 넘는다. 이 ‘빅5’가 전체 매출의 50%를 가져간다는 게 업계 분석이고 보면, 올해 아웃도어 시장 규모는 3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2001년 5000억원대이던 시장이 2006년 1조원을 돌파하고, 2009년 2조원을 넘어서더니 10년 만에 6배로 커진 것이다.

아웃도어 시장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매년 20∼30%씩 고성장을 계속해 왔다. 국내 패션산업에서 단일 분야가 이처럼 장기간 고성장을 유지해 온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한형석 몽벨 과장은 “작년에 비해 올해 매장 수는 2배, 매출액은 4배 늘었다”면서 “다른 업종에서 일하는 친구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다들 거짓말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LS네트웍스는 2008년 말 일본 브랜드 몽벨을 한국에 선보였다. 몽벨은 국내 영업 3년 만인 내년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 과장은 “성장속도가 매우 빠르다. 실적자료를 만들다 보면 우리도 깜짝 놀랄 때가 있다”고 전했다.

가을의 전투 ‘광고전쟁’ ‘다운전쟁’

광고전도 치열하다. 공효진 하정우(노스페이스), 이승기 이민정(코오롱스포츠), 이효리(휠라스포트), 장혁 천정명(아이더), 한채영(와일드로즈), 최강희(웨스트우드), 고수(머렐) 등 최정상급 모델이 총출동해 격전을 벌이고 있다.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광고에 연예인 모델을 기용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전까지 아웃도어 광고는 잡지나 신문에 집중돼 있었고, 모델로 엄홍길 박영석 오은선 등 전문 산악인을 쓰는 게 일반적이었다.

노스페이스는 지난해 영화배우 공효진을 광고모델로 발탁하며 아웃도어 브랜드들의 연예인 모델 시대를 열었다. 이 회사는 여자도 아웃도어를 입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패션감각이 좋다고 소문난 공효진을 선택했다고 한다. 당시 다른 업체들 분위기는 연예인 모델, 그것도 여성 모델이 효과가 있을지 회의적이었다. 아웃도어는 전문가용, 남성용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것이다.

연예인 모델의 등장은 아웃도어가 등산 애호가들의 소규모 시장에서 패션산업의 주류로 발돋움했음을 알리는 신호가 된다. 코오롱FnC 홍보팀의 양문영 차장은 “예전에는 등산을 하는 사람들만 아웃도어에 관심을 가졌다”며 “빅스타를 모델로 기용한다는 것은 아웃도어가 불특정 다수에 다가가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아웃도어 브랜드들은 올해 마케팅 비용을 지난해보다 많게는 3배까지 늘렸다. 신생 브랜드에 속하는 아이더와 네파는 하반기에만 50억∼60억원을 쏟아붓는다. 코오롱스포츠는 4년 전 중단한 TV광고를 재개했고, 컬럼비아도 올해 처음 TV광고를 시작했다.

가을 마케팅의 최고 격전지는 다운재킷. 히말라야 산행을 위해 개발된 다운재킷은 우리나라에서 겨울 필수품이 됐다. 올해는 7월부터 ‘다운전쟁’이 시작됐다. K2코리아는 7월부터 다운재킷 판매를 시작했고, 노스페이스는 8월 ‘퀀텀눕시’라는 이름의 한정판 다운재킷을 발매해 두 달 만에 다 팔았다. 장희수 노스페이스 대리는 “작년에는 다운재킷이 없어서 못 팔았다”며 “올해는 모든 브랜드들이 수량을 예년보다 1.5배에서 2배가량 늘렸다”고 말했다.

컬러와 디자인 중심으로 진행되던 다운전쟁은 최근 소재와 기술을 둘러싼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 필파워(다운의 복원력)가 얼마냐, 얼마나 가벼우냐, 어느 나라 거위털이냐, 털 빠짐 방지 기술이 얼마나 좋으냐 등이 경쟁 포인트. 박은주 블랙야크 과장은 “다운재킷은 가을 매출의 30∼40%를 차지한다”며 “가을 겨울에는 다운, 봄 가을에는 바람막이, 여기가 가장 치열한 시장이다”라고 말했다.

변방에서 중심으로

아웃도어 시장은 오랫동안 패션산업의 변방에 머물렀다. 80년대 중반 호시절이 있긴 했다. 경제사정이 나아지면서 가족을 데리고 야외로 놀러나가기 시작하던 때다. 당시만 해도 콘도나 펜션 같은 숙박시설이 없었다. 다들 텐트를 가지고 갔다. 공장에서 나온 텐트를 확보하기 위해 대리점 주인들끼리 몸싸움을 벌였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업계에 회자된다. 이때까지 아웃도어 시장의 중심은 장비였다. 의류는 관심 밖이었다.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아웃도어 시장이 특히 어려웠던 시기다. 이 시기엔 골프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당시 골

프 브랜드 직원들은 연말 보너스를 1000%씩 받았다고 한다.

상황은 2000년대 중반 바뀌었다. 웰빙 바람이 불었고, 주5일 근무제가 시작됐다. 지방자치단체들은 경쟁적으로 등산로와 캠핑장을 정비했고, 걷기코스를 개발했다. 숙박시설도 늘었다. 아웃도어 시장의 전성기가 도래한 것이다.

양문영 코오롱FnC 차장은 “아웃도어는 등산복으로 시작해 레저 활동이 증가하면서 야외에서 입는 옷으로 쓰였고, 지금은 일상복으로까지 발전했다”고 말했다. 골프 브랜드에 밀려 눈칫밥이나 먹던 코오롱스포츠는 의류 브랜드들이 모여 있는 코오롱FnC 내에서 대표주자로 부상했을 뿐만 아니라 코오롱그룹 전체에서도 성장률이 가장 높은 알짜기업이 됐다. 아웃도어 업체들은 어려운 시절을 오래 보내왔기 때문에 조직이나 경영에 군살이 없다. 이것이 고속성장의 또 다른 원인으로 작용했다.

본사 교육을 하면 대절버스를 타고 올라오던 지방의 대리점 주인들이 벤츠를 몰고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부터다. 1년에 50억원씩 매출을 올리는 매장들이 나타났고, 연매출 30억원 이상인 대리점주들의 모임도 만들어졌다. 아웃도어 매장이 돈을 쓸어 담는다는 게 알려지자 지방 쇼핑가마다 아웃도어 거리가 생겨났다. 아웃도어 매장은 의류 매장 중에서 객단가(고객 1명당 평균 구매가)가 가장 높다.

한때의 유행일까?

외국 본사 직원들이 한국에 오면 깜짝 놀란다고 한다. 지난 5년간 한국에서 나타난 아웃도어 시장의 고속성장은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일본 같은 아웃도어 선진국에서는 1970년대 이후 시장이 안정화 단계에 들어갔다.

한국 아웃도어 시장의 경이적인 성장률은 얼마나 더 지속될까? 업계의 전망은 앞으로 수년간 성장세가 유지될 것이라는 데로 모아져 있다. 양문영 코오롱FnC 차장은 “아웃도어는 기능성에 충실하면서 패션성을 강화해 나가는 중”이라며 “스포츠나 캐주얼 등 다른 영역을 통합해 가면서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1500만명이나 되는 등산인구가 든든한 자산이다. 한형석 과장은 “당일 산행이 가능한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말한다.

“지하철 타고 산에 갈 수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 말고 거의 없다. 우리나라 대도시들을 봐라. 주변에 다 명산이 있다. 게다가 대부분 1000m 이하의 산들이다. 누구나 언제나 산에 갈 수 있다.”

여성 고객의 유입, 자전거 바람, 기상이변 등도 시장의 성장을 밀어주는 요인으로 꼽힌다. 내년엔 국내 1위 패션기업 제일모직이 아웃도어 시장에 진출한다. 신생 브랜드들이 쉴 새 없이 생겨나면서 업체 간 인력 스카우트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아웃도어 시장에 낙관론만 도는 건 아니다. 국내 아웃도어 문화가 그리 튼튼하지 않다는 점을 들어 최근의 고속성장을 한때의 유행이나 쏠림현상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 한국인들의 아웃도어 활동은 등산에 집중돼 있고, 등산도 장거리 산행은 거의 없고 당일치기 위주다. 그러다보니 아웃도어 시장이 의류 중심으로만 성장해온 한계를 보였다. 등산복이 그렇게 많이 팔려나가는 동안 등산장비 판매는 제자리걸음을 했다. 한형석 과장은 “매출 패턴으로 보면 우리나라 등산문화는 아침 9시에 출발해서 오후 3시쯤 내려와 막걸리 먹고 헤어지는 식”이라며 “당일치기 등산이 우리나라 아웃도어 문화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쉬운 등산, 당일치기 등산 중심의 한국식 아웃도어 문화 속에서 기능성으로 무장한 아웃도어 시장이 고속성장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처럼 보인다. 동네 뒷산 다니는 사람들 상대로 히말라야 고봉에 오르는 사람들이나 입는 비싼 옷을 파는 식으로 고속성장을 이뤄온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