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라의 수다] 아름다운 신세계

입력 2010-11-04 18:11


나는 하루 평균 여덟 시간 인터넷을 사용한다. 글을 쓸 때는 항상 모르는 것을 찾아볼 수 있도록 검색창을 열어 놓고 유튜브에서 찾은 음악이 흐르게 한다. 쉴 때는 인터넷으로 외국 텔레비전 쇼를 보거나 좋아하는 신문의 온라인 버전을 읽는다. 인터넷은 이렇게 내 삶의 질을 향상시켰지만, 나는 사이버모빙(cyber mobbing·온라인상에서 특정인에게 가해지는 집단 공격)에 대한 기사나 경험을 통해 그 ‘아름다운 신세계’의 이면을 볼 수밖에 없었다.

사이버모빙이 한국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인터넷에는 수많은 언어로 된 폭언과 비방이 난무한다. 문제는 한국사회가 인터넷 스캔들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한 달이 멀다 하고 새로운 스캔들이 고개를 들고, 잠잠해진다 싶으면 어느새 새로운 증오의 대상이 나타난다. 이런 공격의 출발점은 보통 아주 사소한 것이거나 지어낸 이야기다. 스캔들의 주인공은 영문도 모른 채 하루아침에 죄인이 된다. 가끔은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속 이야기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에픽하이’ 멤버인 타블로의 예만 봐도 알 수 있다. 평균 이상의 지능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는 증오의 대상이 됐다. 재능 있는 청년이 언론을 상대로 자신을 변호하고 경찰까지 동원돼 진실을 확인시켜야 했다는 사실은 내게는 이해가 안 되는 정도를 넘어선다. 한국인들은 악성 댓글을 몇몇 10대들의 장난쯤으로 치부하는데, 타블로의 경우 선동적 여론몰이의 출발점은 57세 한국계 미국인이고, 내 경우 가장 상스러운 모욕과 위협의 주인공은 30세의 유명한 대기업 사원이었다. 유치한 놀이가 아니라 마땅히 처벌받아야 하는 범죄다.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한다. 맞는 말이다. 누구나 자기 의사를 표현할 권리가 있고 이른바 공인들은 어느 정도 유명세 치를 각오는 돼 있어야 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내 자유가 끝나는 곳에서 타인의 자유가 시작된다는 이념을 기반으로 세워졌다. 연예인도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권리를 가진 인간이다. 언론에 많이 노출되는 직업을 가졌다고 그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마음속에 쌓인 공격성을 인터넷에 풀어놓는 건 반항심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이버모빙 현상의 배후에 교육제도의 엄청난 실패가 도사리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볼 일이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기회가 없던 아이들이라면 익명의 공간에서 도 넘는 행위를 한다고 이상할 것이 있겠는가? 일상적 불화를 제대로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면 57세가 되어 인터넷에서 누군가를 만신창이로 만들며 변태적 즐거움을 느낀다고 이상할 것이 있겠는가?

악성 댓글을 쓰는 사람들은 한국 인터넷 사용자의 1%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99%는 어떤가. 이렇게 소수의 사람들이 인터넷 게릴라로 행세할 수 있는 데는 우리도 책임이 있지 않을까? 인위적으로 부풀려진 스캔들 기사를 부지런히 찾아 읽는 독자로서 우리는 스스로를 그들의 공범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베라 호흘라이터(tbs eFM 뉴스캐스터) 번역 김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