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하고 먹어도 될까… ‘맛있는 식품법 혁명’
입력 2010-11-04 17:21
맛있는 식품법 혁명/송기호/김영사
현대인의 밥상은 풍성하다. 가까운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의 식품매장에 가면 언제나 먹을거리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값싸고 맛있게 보이는 식품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어! 그런데 가만 있자. 자세히 보니 식품들에 어떤 첨가물이 들어 있는지 제대로 적혀있지 않다. 우리가 고른 이 식품들, 과연 안심하고 먹어도 될까?
현대인은 식품체계가 승인하고 공급하는 것을 먹는다. 땅과 바다에서 난 식품이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결정하는 주체는 소비자가 아니라 식품법이다. 먹는 일은 생존의 가장 중요한 일인데, 누군가 나와 내 가족이 먹는 식품과 관련된 모든 결정을 이미 다 해놓은 셈이다. 근데 이 식품법이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허술하다. 불안하기 짝이 없다.
변호사이며 조선대 법과대학 겸임교수인 저자는 우리 밥상을 만드는 푸드 시스템의 불편한 진실을 고발한다. 배추 파동에서부터 집단 식중독과 유전자 조작 식품(GMO) 등 기존의 제도권 학자와 전문가들이 소홀히 했던 문제들을 깊이 파헤친다. 누군가 밥상 뒤에서 은밀하게 우리 건강과 먹을거리를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2005∼2006년 보건복지부와 학교급식 식기세척제 사건을 다투면서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 고시인 위생용품의 규격 및 기준에 따르면 유엔기구가 정한 발암 가능물질인 ‘니트릴로 트리아세트산 트리나트륨’과, 삼키면 호흡기에 화상을 입을 수 있는 ‘메타술폰산’이 식기세척제 원료로 사용될 수 있었다. 복지부는 저자가 고시 개정을 요청한지 21개월이 지나서야 세척제 원료 가능 목록에서 메타술폰산을 제외시켰다. 하지만 니트릴로 트리아세트산 트리나트륨은 그대로 뒀다. 아이들에게 암을 유발할 수 있는 화학물질의 사용을 정부가 용인한 셈이다.
“나는 호흡기 화상 물질을 학교급식 식기세척에서 제외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발암 가능물질과의 싸움에서는 졌다. 나는 아이들의 건강보다 자동식기세척기 쪽을 향해 미소 짓는 법의 맨얼굴을 보았다.”(15쪽)
이 사건을 겪은 저자는 지난 5년간 모두 124회의 행정정보 공개 청구를 통해 얻은 정부 문서를 근거로 우리 식품법 100년사를 되짚어보고 먹을거리를 둘러싼 국가와 법의 은밀한 관계를 추적했다.
비슷한 일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2009년 초여름 생수 제품에서 브론산염이 나오는 사건이 발생했다. 브론산염은 유엔 국제암연구소가 지정한 발암 가능물질이다. 자연의 물에는 없지만 소독을 한다며 오존으로 화학 처리하는 생수에서는 생긴다. 환경부는 브론산염이 검출된 생수가 어떤 제품인지 공개하지 않는 대신 생수 회사에 위험 제품을 모두 회수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생수 회사는 위험 제품의 35%를 회수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환경부는 이 생수 회사가 어디인지 공개하지 않겠다고 알려왔다. 우리는 결국 발암 물질이 들어간 생수 회사와 제품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저자는 좋은 밥을 먹을 권리는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요구이며 인권이라고 강조한다. 좋은 사회는 구성원들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하는데 우리 식품법은 이런 상식을 배반한다고 비판한다. 우리 식품법이 모순투성이가 된 것은 일제 때인 1911년 제정된 데라우치 식품법에서 시작해 100년에 걸쳐 뿌리를 내렸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변화의 시작이 식품의 개념을 올바르게 세우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전통적으로 이 땅의 먹을거리였던 개고기가 혐오식품이 되고, 여전히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유전자 조작 식품이 우리 밥상에 오르는 일은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책은 푸드 시스템을 관장하는 세력들이 저지르는 부조리를 비판하는 데 집중한다. 특히 지난 10년간 유전자 조작 식품을 누가 허용했는지 꼼꼼히 따지고 유전자 조작 식품 개발에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참여했음을 폭로한다.
책에는 이밖에도 식품체계를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 식품 규격과 식품 표시 문제를 거론한다. 예를 들어 정육점 쇠고기에 ‘1등급’이라고 적혀 있다고 해도 최고급 쇠고기가 아니다. 1등급보다 더 높은 ‘1++등급’과 ‘1+등급’이 있다. 이것이 엄연한 우리 식품법의 현실이다.
음험한 식품법에 통제되는 우리 밥상은 마치 기계가 조종하는 가상 세계인 매트릭스를 닮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저자는 거대한 식품체계 속에 던져진 소비자 개개인은 무기력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식품체계를 바로 세울 힘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소비자에게서 나온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3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생태계를 덜 착취하며 지역의 지속을 뒷받침하는 식품을 ‘선택’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첫째다. 여기에는 식품 정보 공개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잘못된 식품체계를 개선하라고 민원을 제기하는 것도 포함된다. 생활협동조합(생협) 등 소농과 소비자가 함께 윈윈하는 새로운 식품체계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자치’가 또 하나의 대안이다. 저자는 아울러 소비자와 농민, 녹색식품 생산업체, 조리사 등이 ‘연대’를 통해 그런 자치의 공간을 점차 확산시켜 나가야한다고 제안한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