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선 약사의 미아리서신] 붕어빵을 무척이나 좋아하던 ‘겨울아이’

입력 2010-11-03 17:59


혹시 붕어빵 좋아하시는지요?

갑자기 다가온 추위는 옷깃을 여미게 하고 발걸음마저 빨라지게 합니다. 겨울이 오면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하기 위해 새롭게 등장하는 거리의 풍경이 눈조차 즐겁게 합니다. 숭덩 숭덩 썬 무와 다시마, 멸치로 맛을 낸 국물 속에 뽀얗게 익어가는 어묵꼬치는 추운 어깨를 조금은 펴게 합니다. 그 옆에서 노랗게 익어가는 붕어빵의 고소한 냄새는 지나가는 이들의 발길을 멈추게도 하지요.

수진씨는 겨울을 기다리는 ‘겨울 아이’였습니다. 겨울이 오면,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해 붕어빵 장수들이 거리에 나오기 시작하면 그녀는 행복해집니다. 그녀가 좋아하는 붕어빵을 매일 살 수 있으니까요. 수진씨를 이 동네에서 알고 지낸 지는 십년 조금 넘었습니다. 관절과 근육이 쉽게 쇠약해지는 체질인 그녀는 약국 단골손님이었지요.

“약사이모, 저 다리가 무척 아픈데요. 저희 가게에 오시면 안 될까요? 가게엔 아무도 없구요. 너무 아파서 제가 도저히 나갈 수 없어서요.”

다급한 수진씨의 전화로 저와 만나게 되었답니다. 처음엔 환자와 약사로 알게 되었습니다. 힘들게 일을 한 날의 그녀는 관절이 전부 아프답니다. 열도 심하게 나곤 했습니다. 그녀의 체력은 날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몸을 움직이는 게 어려운 날에는 일을 쉬기도 했습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본격적인 치료를 하자고 수차례 이야기했으나 큰 병원 가는 게 무섭답니다. 그녀를 바라보는 저도 그저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갔고 병은 날로 깊어져 갔습니다. 건조하고 싸늘한 바람이 거리를 채우던 초겨울, 그녀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방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녀의 무릎은 엄청나게 부어 있었고 역시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끙끙거리는 그녀를 잡아 일으켜 병원으로 향하면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녀의 삶은 고통으로 이어간 눈물의 나날이었음을 아버지께 이제 엎드려 고합니다. 뼈를 깎아내며 이어온 그녀의 하루하루가 모두 자신만의 잘못이 아니었음을 알게 하시옵소서. 아픈 몸을 이끌고 그 험한 일을 하면서 자신의 죄를 스스로 정죄하고 있음을 미련한 저는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죄를 정죄하시지 않고 품어 안아주실 분이 하나님 아버지뿐임을 고백합니다. 부디 그녀가 하나님 아버지께서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고 계시는지 알게 하옵소서. 상처뿐인 육신으로 걸어가는 자신조차 품지 못하고 기어가는 저 불쌍한 영혼을 부디 어루만져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께 올리는 기도가 그렇게 절실한 적은 없었습니다. 너무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수진씨의 지친 영혼을 따스하게 안아주실 하나님 아버지가 계심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녀와 함께 가까운 정형외과에 가니 예상한 대로 그녀의 병명은 심한 관절염이었습니다. 관절 기능을 강화시키는 주사를 맞고 물리치료실로 올라가는 그녀를 보고 저는 약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그녀와의 인연은 깊어졌습니다. 그 후 그녀는 매일 병원에 가서 주사 맞고 물리치료를 받았습니다. 병원을 다녀오면서 그녀는 항상 붕어빵을 한 봉지 가득 사가지고 왔습니다. 사온 붕어빵을 전부 다 저에게 주고 가곤 했지요. 처음엔 별 생각 없이 받아서 몇 개 먹고 남는 거는 교회 식구들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어느 날 관절염이 좀 나아졌는지 궁금해 붕어빵을 내 놓는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한데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 대답하는 그녀의 얼굴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 얼굴표정이 그러냐”고 물어보니 “동생 등록금이 걱정”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치료 받으러 다니면서 일을 쉬었기에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한 거였습니다.

그녀에게 왜 붕어빵을 그리 많이 사서 정작 본인은 먹지도 않고 전부 내게 주고 가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어렸을 적에 너무 많이 먹어서 이제는 그 냄새도 맡기 싫은데 그래도 멀리서 나는 붕어빵 냄새에 자신도 모르게 발이 끌려간다면서 피식 웃었습니다. 4남매 중 맏이로 태어난 그녀는 자식을 키우기 위해 밤낮으로 고생하는 엄마의 모습을 아주 어릴 적부터 가까이에서 지켜보아야 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지지리 궁상을 떨며 고생하는 엄마가 참 미웠다고 말하는 수진씨의 눈에서 바다를 보았습니다.

일주일 뒤에 뵙겠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평안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