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2차상봉… 치매 할아버지의 기적, 한눈에 알아보고 “내딸아”

입력 2010-11-04 00:06

5년 전부터 치매를 앓고 있는 박상화(88)씨는 3일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 만난 북측 딸 준옥(64)씨를 한눈에 알아봤다. 6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한시도 잊어본 적 없는 딸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상화씨는 상봉 전날까지도 남측 가족들에게 “우리 금강산에 관광 온 것이냐”고 물었을 정도로 증세가 심했다. “내 딸아 미안하다. 혼자 내려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고사리 손이었는데 이제는 주름만 가득하구나.” 상화씨는 꼭 잡은 준옥씨의 손을 놓지 못했다.

남북이산가족 297명은 이날 오후 3시부터 2시간 동안 서로 만나 잠시나마 이산의 한을 달랬다. 남측 상봉 신청자 94명과 동반가족 43명은 오전 속초를 출발해 육로를 통해 금강산 지구로 이동했다. 북측 가족들은 대연회장에서 남측 가족들을 맞았다. 북측 가족들은 모두 김일성 배지를 가슴에 달아 남측과 선명히 구분됐다. 북측 가족들이 감정을 절제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상봉 행사가 진행됐다.

북측 아내 안순화(92)씨를 만난 임봉국(89)씨는 주름이 깊게 팬 처의 얼굴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10여년 같이 살면서 말싸움 한번 하지 않았을 정도로 금실이 좋았던 부부였지만 1951년 1·4후퇴 때 헤어져 지금껏 생사도 모른 채 살아왔다. 봉국씨는 “그래서 잘 쫓아다녀야 하는 거야, 맹추들”이라고 다그치면서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닐 만큼 예뻤는데”라며 애통해 했다. 임씨는 휠체어에 앉아 울고 있는 아내에게 “내가 큰 죄를 지었다”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남측 서익환(72)씨는 국군포로로 지난해 4월 사망한 형님 고(故) 서필환씨가 북측에 남긴 세 아들 백룡(55) 승룡(45) 철룡(42)씨를 만났다. 익환씨는 조카들에게서 형님이 남측 가족과 부모님을 그리워하다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듣고 “1년 전에만 만났어도 형님을 생전에 뵐 수 있었을 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남측은 200명을 대상으로 한 생사확인 과정에서 국군포로와 납북자 26명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북한은 익환씨의 형님의 사망 사실만 확인해줬을 뿐 나머지 25명에 대해서는 생사확인 불가 통보를 했다. 이를 두고 북측이 국군포로와 납북자를 의도적으로 배제시켰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2차 상봉은 5일까지 2박3일 일정으로 진행된다. 1차 때와 마찬가지로 4차례 개별 및 단체 상봉과 2차례의 공동 식사가 예정돼 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